동용승 (사)굿파머스 사무총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국내외 관광객 넘쳐나는 일본
반도체·상사 중심 증시도 호황
“30년간 이렇게 좋은 적 없어”

한일 GDP 대비 내수률 ‘차이’
‘중산층 재구축’ 방침 내건 日
“내수 주도형 성장 전환 필요”

일본 도쿄 시부야 거리의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AP/뉴시스)
일본 도쿄 시부야 거리의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AP/뉴시스)
[핵심요약]

◆수출→내수주도형 전환하는 일본

1980년대 플라자 합의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란 긴 터널을 지난 일본경제는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일본경제는 이제 희망이 없고,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고 자만하고 있는 와중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 일본 기업인은 지난 30여년 동안 지금 만큼 좋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은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내수주도형으로 전환한 것이다. 일본 쇼핑몰의 식품관에는 소비자들이 줄을 선다. 지방에서도 다르지 않다. 바로 내수의 힘이다. 내수가 견고하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까다로움을 맞추기 위해 기업들이 끊임없이 경쟁하고 고민한 결과다.

◆일본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

일본의 사례는 한국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 첫째가 바로 내수의 강화다. 이와 함께 수출주도형 성장에서 내수주도형으로의 대전환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장기 정책을 단기에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미-중 갈등 속에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파고와 저출산 고령화의 절벽 끝에 직면해 있다. 저임금으로 인한 저소득 문제와 노동력 부족 문제도 풀어가야 할 큰 숙제다. 그럼에도 일본이 30년 동안 꾸준히 추진해 왔던 정책이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의 큰 축을 전환하는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경제안보 시대에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다.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

일본 여행에 붐이 일고 있다. 지금 일본은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어디를 가든 한국 관광객을 만나게 된다. 최근 일본 정부 관광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관광객 10중 4명은 한국인이다. 보복 관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일 항공편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된 데다 유가도 안정됐지만 항공운임은 내려갈 줄 모른다. 업계에서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팬데믹 시기의 적자를 이 기회에 만회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경제 위기 속 성장하는 일본경제

핵심은 환율이다. 팬데믹 이전 원-엔 환율은 1100원 전후였는데 최근에는 920원 전후로 뚝 떨어졌다. 가격이 저렴하니까 관광객이 몰린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2023년 1분기 일본경제 성장률은 0.7%, 연율로는 2.7%를 기록했다. 당초 예상을 훨씬 넘어선 기록에 일본 정부조차 놀라는 눈치다. 이 수치는 한국은 물론 미국을 넘어선다. 속을 들여다보니 설비투자와 내수가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에 대한 설비투자가 활발하고, 내수 역시 견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증시 역시 호황을 누린다. 외국인 투자가 증가한 것이 하나의 요인인데, 주로 종합상사와 반도체 분야다. 일본 종합상사는 자원거래에 국제적 경쟁력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자원 가격이 요동쳤다. 일본 종합상사들은 날개 단 듯 실적을 올릴 기회를 맞았고, 역대 최고의 매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 긴 터널 지나는 중

1980년대 플라자 합의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란 긴 터널을 지난 일본경제는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일본경제는 이제 희망이 없고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고 자만하고 있는 와중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 일본 기업인은 지난 30여년 동안 지금 만큼 좋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터널을 지나는 과정에 대체 무엇이 있었던 걸까. 일본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내수를 견고하게 지켜왔던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GDP 대비 내수의 비중은 84.8%다. 한국의 61%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경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출주도형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한국과 일본 모두 인적 자원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은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내수주도형으로 전환한 것이다.

일본 도쿄의 명소 아사쿠사 센소지 입구 상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AP/뉴시스)
일본 도쿄의 명소 아사쿠사 센소지 입구 상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AP/뉴시스)

버블 경제 시기에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급증하자 일본경제는 공동화 현상을 보였다. 이렇게 해외에 진출했던 기업들이 속속 일본으로 다시 회귀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배터리 기술, 반도체의 경우 장비 등 핵심기술을 중심으로 일본으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일본 내 자체의 가치사슬이 형성되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미-중 대결의 시기에 일본은 외국 자본의 최적 투자지로 각광을 받게 됐다. 외부적 환경 변화도 일본경제가 다시 일어서는 데 한몫을 한 셈이다.

◆할인할 때마다 동이 나는 쇼핑몰

최근 일본경제의 회복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점은 또 있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일본 소비자들의 손에 항상 쇼핑백이 들려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쇼핑몰의 식품관에는 소비자들이 줄을 선다. 폐관을 앞두고 대부분의 식품이 동이 난다. 단지 도심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지방에서도 다르지 않다. 바로 내수의 힘이다. 일본 소비자들은 소비는 많지만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기업들은 이 기준을 맞춰야 생존할 수 있다. 내수가 견고하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까다로움을 맞추기 위해 기업들이 끊임없이 경쟁하고 고민한 결과다. 이러한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주목할 사항은 수출주도형에서 내수주도형으로 전환하는데 30년의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다는 점이다.

◆기시다 총리의 일본 정부 방침은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50%를 넘었다. 지지율을 기반으로 경제부문에 과감한 조치를 이어간다. 일본 정부는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 원안에서 임금 인상과 저출산 대책을 핵심으로 ‘두터운 중산층’을 재구축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일본 기업의 저임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대기업의 임금을 듣고 일본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30년 동안 임금이 거의 정체됐던 일본에 비하면 한국기업들의 임금은 급증한 셈이다. 이것은 바로 가성비, 즉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반면 일본 중산층은 어렵다. 가계소득이 늘지 않으니 그만큼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내수는 견고하다. 소비자들이 모두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지만 식당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가 있다. 바로 ‘1인 1주문’이다. 2인이 와서 1인분만 주문하는 경우가 많음을 의미한다. 일본 식당에서는 이런 문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당연히 1인 1주문이고, 음료와 후식까지도 챙긴다. 일본이 내수가 견고한 것은 일본 소비자들의 이러한 기본적 마인드가 작용한 결과다.

◆성장 가로막는 과제들 살펴보니

일본경제가 어두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미-중 갈등 속에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파고에 직면하고 있으며, 저출산 고령화의 절벽 끝에 놓여 있다. 저임금으로 인한 저소득 문제와 노동력 부족 문제는 풀어가야 할 큰 숙제로 꼽힌다. 미국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이 고금리 긴축정책을 고수하는 가운데 저금리를 유지하며 낮은 환율이 지속되는 것도 일본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볼 때 외부 환경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기본적인 경제순환을 유지할 수 있는 내수의 안정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내수주도형 성장 방식으로의 대전환은 일본경제의 앞날을 밝게 해준다.

지난 3월 19일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 일본행 탑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지난 3월 19일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 일본행 탑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일본은 5~10년 앞서 한국이 직면할 미래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런데 현시대는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인구문제는 한국이 더 심각하다. 한국경제는 아직도 수출주도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외부적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중 대결의 격랑은 한국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싱하이밍 대사의 행태에서도 드러나지만 중국의 압박은 도를 넘어섰다. 임금 양극화 현상은 노동력 공급의 편중을 심화시키고 있다.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인구 문제는 노동력 공급은 물론, 내수, 고령화 대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이 장기불황의 터널을 나오는 데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일본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점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 가능성을 경고하는 주장이 많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 첫째가 바로 내수의 강화다. 무너진 중산층을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부터 기울여야 한다. 이와 함께 수출주도형 성장을 내수주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각오도 필요하다.

특히 정권이 바뀐다고 장기 정책을 단기에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진정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정권의 성격에 맞춰 앞으로 나아가는 큰 축을 뒤흔들어선 안 된다. 국가의 핵심이익은 정권이 교체돼도 바뀔 수 없다. 독일이 통일이라는 핵심이익 앞에선 정권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수십년 동안 일관된 정책을 지속함에 따라 통일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이는 독일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됐다.

일본이 30년 동안 꾸준히 추진해 왔던 정책이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의 큰 축을 전환하는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위기관리이고 경제안보 시대에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다.

[용어설명]

◆수출주도-내수주도

수출주도형 성장은 주로 수출에 의해 이뤄지는 경제성장으로 외수주도형 성장이라고도 한다. 반면 민간과 정부의 소비 및 투자 등 내수 부문에 의해 경제성장이 이뤄지는 유형은 내수주도형 성장이라 한다.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에 대한 수출과 내수의 기여도를 기준으로 수출이 내수보다 큰 경우 수출주도형, 내수의 비중이 더 큰 경우에는 내수주도형 성장으로 나눌 수 있다. 수출주도형 성장 위주의 국가들은 내수 규모의 한계를 초월해 해외 시장을 상대로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대체로 내수주도형 위주의 국가들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홍콩와 싱가포르 등의 아시아 국가들과 스위스·네덜란드·아일랜드·벨기에 등의 유럽국가들이 수출주도형으로 고도 성장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일본은 1990년대 초 이래로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장기간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시달렸다. 이 위기는 이전의 불황과는 그 성격이 질적으로 다른, 전후 55년 체제를 뒤흔드는 근본적인 위기로 인식됐다. 불황은 거품 경제가 무너지고 금융권의 부실 채권이 대량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대출 등에 의해 사들인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거품 경제의 붕괴로 한없이 하락했다. 단순히 부실 채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상 일본은 1990년대에 들어 급격한 정보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새로운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2010년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로 떨어졌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의 지위도 처음으로 중국에 넘겨줬다. 불황을 거치면서 낙담한 수많은 일본인들이 극단 선택을 하며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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