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헤르손에서 한 강아지가 물에 홀딱 젖은 채 물에 잠긴 버스에 갇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헤르손에서 한 강아지가 물에 홀딱 젖은 채 물에 잠긴 버스에 갇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러시아가 장악한 우크라이나의 남부 헤르손주(州)에 있는 카호우카 댐이 붕괴되면서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호수인 소양호의 약 6배 물을 담은 초대형 댐의 붕괴로 사람이나 동물 가릴 것 없이 홍수에 쓸려 내려가면서다.

댐이 지난 6일(현지시간) 붕괴된 지 2주 가까이 흘렀지만 애꿎은 민간인들은 기르던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안고 대탈출을 이어가는 등 여파가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바닥을 드러낸 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지역의 카호우카 저수지에 7일(현지시간) 물고기들이 폐사해 있다. 전날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에서 길이 3.2㎞의 카호우카 댐이 파괴돼 엄청난 양의 물이 주변 마을을 덮쳤다. (로이터/연합뉴스)
바닥을 드러낸 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지역의 카호우카 저수지에 7일(현지시간) 물고기들이 폐사해 있다. 전날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에서 길이 3.2㎞의 카호우카 댐이 파괴돼 엄청난 양의 물이 주변 마을을 덮쳤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수 수위가 처음보단 낮아졌으나 그 후폭풍은 이제 본격화됐다는 말이 나온다. 터전과 생계 수단을 잃은 것도 큰 재앙이지만 더 큰 문제는 당장 눈앞에 놓인 식수와 식량 문제다.

유엔이 댐 붕괴 당시 가까운 미래에 최대 수백만명이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체르노빌 이후 최악의 생태계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카호우카 댐이 파괴된 후 10일(현지시간) 헤르손주 마을이 침수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카호우카 댐이 파괴된 후 10일(현지시간) 헤르손주 마을이 침수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의 집계를 종합하면 18일(현지시간) 사망자는 최소 45명까지 불어났다고 CNN 등 외신이 이날 전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까지도 주택 900채가 물에 잠겨 있으며 어린이 474명을 포함해 총 3614명이 홍수로 인해 삶의 터전을 뒤로 한 채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댐 붕괴로 43억 달러(약 5조 5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인근 아파나시이우카의 주민이 12일(현지시간) 물에 잠긴 자신의 집을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인근 아파나시이우카의 주민이 12일(현지시간) 물에 잠긴 자신의 집을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람들이 기르고 있는 동물들도 재앙을 피할 순 없었다. 현재 SNS에 올라오는 영상은 물바다가 된 마을의 모습과 함께 물이 빠지면서 수천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저수지 수위가 낮아진 탓에 물고기 개체 수를 보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특히 고양이가 다리 밑에까지 차오른 물을 피하고자 벽에 착 붙어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매달려 있는 모습, 물에 홀딱 젖은 사슴 한 마리가 몸을 떠는 장면, 침수된 집에서 개 한 마리가 열린 창문 틈새로 주민에 의해 구출되는 모습은 사람이 벌인 전쟁이 동물과 자연에까지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헤르손주 카호우카 댐이 파괴된지 사흘째인 8일(현지시간) 물에 잠긴 현지 마을에서 주민들이 개를 구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헤르손주 카호우카 댐이 파괴된지 사흘째인 8일(현지시간) 물에 잠긴 현지 마을에서 주민들이 개를 구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문제는 앞으로다. 물 공급 시설이 제때 복구되지 않는다면 곧 광활한 댐 하류 일대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남부까지 농업이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카호우카 댐은 헤르손주 관개시설의 94%뿐 아니라 인근 자포리자주의 74%, 드니프로페트로우스카주의 30%에 ‘젖줄’을 공급해왔다.

그러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이 이번 폭파를 놓고 서로 ‘책임 공방’만 벌이고 있다. 그리고 제3국들의 전쟁 중재까지 사실상 무산되면서 전쟁 위기는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언제까지 인간의 욕심으로 애먼 자연이 더 파괴돼야 할까.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8일(현지시간) 카호우카 댐 파괴로 침수 피해를 입은 남부 헤르손주 주민에게 식량을 전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8일(현지시간) 카호우카 댐 파괴로 침수 피해를 입은 남부 헤르손주 주민에게 식량을 전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노바카호우카 댐이 파괴된 지 이틀째인 7일(현지시간) 위성에서 촬영된 현장의 모습. 이 사건으로 엄청난 양의 물이 주변 마을을 덮쳐 주민들의 필사적인 탈출이 이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노바카호우카 댐이 파괴된 지 이틀째인 7일(현지시간) 위성에서 촬영된 현장의 모습. 이 사건으로 엄청난 양의 물이 주변 마을을 덮쳐 주민들의 필사적인 탈출이 이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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