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러시아가 장악한 우크라이나의 남부 헤르손주(州)에 있는 카호우카 댐이 붕괴되면서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호수인 소양호의 약 6배 물을 담은 초대형 댐의 붕괴로 사람이나 동물 가릴 것 없이 홍수에 쓸려 내려가면서다.
댐이 지난 6일(현지시간) 붕괴된 지 2주 가까이 흘렀지만 애꿎은 민간인들은 기르던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안고 대탈출을 이어가는 등 여파가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홍수 수위가 처음보단 낮아졌으나 그 후폭풍은 이제 본격화됐다는 말이 나온다. 터전과 생계 수단을 잃은 것도 큰 재앙이지만 더 큰 문제는 당장 눈앞에 놓인 식수와 식량 문제다.
유엔이 댐 붕괴 당시 가까운 미래에 최대 수백만명이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체르노빌 이후 최악의 생태계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다.
실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의 집계를 종합하면 18일(현지시간) 사망자는 최소 45명까지 불어났다고 CNN 등 외신이 이날 전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까지도 주택 900채가 물에 잠겨 있으며 어린이 474명을 포함해 총 3614명이 홍수로 인해 삶의 터전을 뒤로 한 채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댐 붕괴로 43억 달러(약 5조 5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기르고 있는 동물들도 재앙을 피할 순 없었다. 현재 SNS에 올라오는 영상은 물바다가 된 마을의 모습과 함께 물이 빠지면서 수천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저수지 수위가 낮아진 탓에 물고기 개체 수를 보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특히 고양이가 다리 밑에까지 차오른 물을 피하고자 벽에 착 붙어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매달려 있는 모습, 물에 홀딱 젖은 사슴 한 마리가 몸을 떠는 장면, 침수된 집에서 개 한 마리가 열린 창문 틈새로 주민에 의해 구출되는 모습은 사람이 벌인 전쟁이 동물과 자연에까지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문제는 앞으로다. 물 공급 시설이 제때 복구되지 않는다면 곧 광활한 댐 하류 일대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남부까지 농업이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카호우카 댐은 헤르손주 관개시설의 94%뿐 아니라 인근 자포리자주의 74%, 드니프로페트로우스카주의 30%에 ‘젖줄’을 공급해왔다.
그러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이 이번 폭파를 놓고 서로 ‘책임 공방’만 벌이고 있다. 그리고 제3국들의 전쟁 중재까지 사실상 무산되면서 전쟁 위기는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언제까지 인간의 욕심으로 애먼 자연이 더 파괴돼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