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싸움을 하더라도 상처와 앙금이 남지 않으며 쉽게 화해가 이뤄진다는 것을 뜻한다. 부부사이가 좋으면 ‘금슬(琴瑟)’이 좋다고 했다. 금은 거문고, 슬은 비파다.

좋은 부부관계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단어가 ‘금슬’이다. 금슬지락(琴瑟之樂 사이가 좋은 것), 금슬우지(琴瑟友之 금슬이 좋아 마치 친구처럼 지내는 것), 금슬상화(琴瑟相和 거문고와 비파소리가 화합하듯 사이가 좋음)라는 글이 있다. 부부가 함께 거문고와 비파를 타며 즐거워하는 정경을 ‘여고금슬(如鼓琴瑟)’이라고 표현했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저잣거리에서 술에 취해 남의 등에 업혀 들어오며 동네방네 주점마다 술값 외상을 지고 다녔으니 부인이 좋아할 리 없었다. 술을 마시면 시를 짓고 전국을 떠돌며 한평생 풍류로 세월을 보냈으니 시선(詩仙)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백의 아내가 아량이 많아 매일 시주를 나누며 문학에 심취했다면 천재 시인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금슬지락만 있었어도 객지로 유랑하면서 끝내는 동정호에 빠져 죽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백제 시대 가요를 찾다가 최근에 재미난 노래 한 수를 발견했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작은 목간(木簡)에 쓰인 ‘숙세가(宿世歌)’라는 가사였다.

목간이란 종이가 없던 시기 나무를 잘라 면을 내고 그곳에 각종 글을 쓴 용구를 말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목간들을 보면 관공서의 물자공급 기록은 물론 이곳에 논어를 베껴 공부하기도 했다.

‘숙세’란 바로 전생이란 뜻이다. 노래가사는 4언의 한자 4련으로 돼 있다.

宿世結業 (숙세결업) 전생에서 맺은 인연으로/ 同生一處 (동생일처) 이 세상에 함께 났으니 / 是非相問 (시비상문) 서로에게 시비를 따진다면/ 上拜白來 (상배백래) 공경하고 절을 한들 모두 헛된 것입니다(필자의역).

능산리 절터는 부여 나성지 부근에 있는 왕찰(王刹) 터로 백제시대 가장 화려한 금동향로가 출토되는 등 매우 유명한 유적이다. 그런데 왜 이 절터에서 이런 백제의 노래가 적힌 목간이 찾아진 것일까.

숙세가는 ‘부부가 전생의 인연으로 일생을 같이했으니 서로 잘잘못을 따져 싸우게 된다면 예를 갖춰 공경하고 약속한 것들이 허망하게 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다. 한 불교학자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배려하는 백제인의 모습이 연상 된다’고 풀이했다. 그는 한 논문에서 ‘백제에서는 숙세선악(宿世善惡)의 업(業)을 지켜 잘못을 뉘우치고 삼세과보(三世果報)를 위한 점찰법회(占察法會)가 열렸던 것’으로 해석했다. 작은 실수나 잘못을 관대하게 바라보는 너그러운 백제인의 심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풍속도를 보면 칼로 두부를 베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일들이 많이 나타난다. 부부싸움 등 가정폭력으로 인한 비극적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2022년 전국에서 접수된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인원은 5만 3985명이다. 백제 땅 대전과 충남의 경우 각각 6744건, 9576건이었다.

모든 불행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없고 분노조절이 이완됐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한국인 부부들 사이에 백제 숙세가의 ‘심금(心琴)’이 울려 퍼질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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