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이전 시기 ‘광화문 앞 공간’ 활용 확인

철제 고정쇠 등 햇빛 가리개 흔적도 나와

조선전기부터 바닥에 돌 깔아 축조 및 활용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와 조선전기 유구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와 조선전기 유구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광화문 월대에서 조선전기 유구 흔적이 추가로 발견됐다. 지난 4월 언론공개회를 통해 광화문 월대의 규모와 기초시설, 전체 모습 등 그간 조사가 완료된 성과를 한 차례 공개한 이후 추가로 실시한 발굴이다.

문화재청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소장 김지연)는 30일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실시한 추구 발굴조사 과정에서 고종년간에 축조된 광화문 월대 하부에서 고종년간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유구의 흔적을 일부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추가로 발굴한 월대 하부층에 대한 조사 성과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광화문 앞 공간의 퇴적양상과 활용양상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고종년간에 월대가 축조되기 이전에도 광화문 앞 공간이 활용됐다는 사실을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해오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물적 증거까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고종년간 월대 하부 퇴적양상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고종년간 월대 하부 퇴적양상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 광화문 밖 공간 활용과 퇴적양상 확인

“광화문 밖 장전(帳殿)에 납시어 친히 무과 시험을 보였다(세종실록 97권, 1442년).” “광화문 밖에 채붕(綵棚)을 맺고 잡희(雜戲)를 베풀게 하였다(세종실록 127권, 1450년).” “광화문 밖에 이르러 산대놀이를 구경하고 한참 뒤에 들어왔다(중종실록 90권, 1539년).”

조선왕조실록 속 광화문 밖 공간 활용과 관련한 기록들이다. 이번 발굴 조사를 통해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은 큰 성과로 꼽힌다.

또한 이번 조사를 통해 광화문 밖 공간의 퇴적양상이 자연층에서 조선전기 문화층(14~16세기)과 조선중․후기 문화층(17세기 이후), 월대 조성층(19세기)을 거쳐 근현대도로층(20세기)의 순으로 형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전기 문화층은 앞선 2007년 광화문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된 층으로 이번에 발굴한 유구는 고정년간 월대의 어도지 서쪽 기초시설 하부 약 120㎝ 지점에 위치한 조선전기 문화층 최상단에서 확인됐다.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 하층 조선전기 방형석재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 하층 조선전기 방형석재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경복궁 근정전 쇠고리(차일고리)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경복궁 근정전 쇠고리(차일고리)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방형(사각형) 석재 1매(76×56×25㎝)를 중심으로 양쪽에 남북방향의 석렬이 각각 한 줄씩 배열된 양상이며, 방형 석재의 중앙에는 직경 6㎝의 철제 고정쇠가 박혀있었다. 이러한 형태는 궁중 행사에서 햇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는 차일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와 유사하며, 경복궁 근정전이나 종묘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양쪽 석렬의 잔존너비는 약 85㎝로, 길이 20~30㎝의 크고 작은 석재가 일정한 너비를 이루며 남북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형태다. 이러한 석렬유구가 동쪽 어도지 하층 탐색구덩이 조사에서도 일부 확인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종년간 월대의 어도지 하층에 전체적으로 유사한 양상의 조선전기 유구가 분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종년간 월대 서편어도지 하층 조선 중기~후기층 유구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고종년간 월대 서편어도지 하층 조선 중기~후기층 유구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30.

조선 중기~후기 유구는 조선전기 문화층을 일부 파괴하고 조성된 층에서 확인됐는데 교란과 파괴가 심하며 민가의 흔적 등도 확인돼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방치돼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후 고종대에 이 층을 정리하고 다시 흙을 쌓아서 월대를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연구소는 “광화문 앞 공간에서는 고종년간 월대와 같은 형식의 건축물은 확인되지 않지만 조선전기부터 바닥에 돌을 깔아 축조하는 방식의 시설들을 갖추고 다양하게 활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의 기능이 상실되며 방치된 채 관리되지 못하다가 고종년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월대가 설치됐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화재청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는 향후 발굴조사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해 경복궁 광화문과 월대 공간과의 연관성, 활용성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 월대(越臺, 月臺): 궁궐의 정전과 같이 중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臺)로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함
* 어도(御道): 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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