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454일째 ‘장기화’
유럽연합·나토 책임론 부각
“우크라이나 주권 인정하되
러 평화협력 관심 이끌어야”

[바흐무트=AP/뉴시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이 공개한 사진에 20일(현지시간) 바그너 그룹 소속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의 손상된 건물 위에서 러시아 국기와 바그너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우크라이나 전쟁 중 가장 길고도 치열한 전투 끝에 그의 군대가 바흐무트를 장악했다고 주장했으며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바흐무트가 토요일 정오 완전히 점령됐다고 밝혔다. 2023.05.21.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이 공개한 사진에 20일(현지시간) 바그너 그룹 소속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의 손상된 건물 위에서 러시아 국기와 바그너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우크라이나 전쟁 중 가장 길고도 치열한 전투 끝에 그의 군대가 바흐무트를 장악했다고 주장했으며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바흐무트가 토요일 정오 완전히 점령됐다고 밝혔다. (AP/뉴시스)
편집자 주

지난해 2월 세계 평화와 안보 유지에 나서야 할 유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침공으로 러-우크라 전쟁이 발발한 지 23일(현지시간)로 454일째를 지나고 있다. 그러나 전쟁 당사국들이 전투 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우방국들의 중재도 불발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쟁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강대국들이 무기를 지원하며 진영대결로 번졌다는 비판 속에 전쟁 피해는 국가 지도자층보다 청년·여성·아이 등 민간인, 특히 약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면서 민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평화가 더욱 간절해지는 시점이다. 이와 관련 유럽인의 입장에서 현지 분위기를 담아 벨기에 국적 위르겐 게르마이스(Jurgen Germeys)가 기고글을 보내와 본지는 이를 번역해 게재한다.

 

위르겐 게르마이스
위르겐 게르마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두 나라 모두에 막대한 인명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우방국들이 주권과 자유 수호를 명목으로 무기와 전쟁 물자를 대규모로 지원하며 전쟁이 더욱 길어지는 양상이다.

우리는 전쟁이 하루 속히 종식되고 사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만 분쟁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갈등 해결은 ‘승리’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폭력 이면에 자리 잡은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먼저 러시아는 전쟁을 벌이기 전 우크라이나가 주권을 행사하고 러시아의 영향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의도를 충분히 고려·예상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최초 러시아 국가의 발상지로서 키이우의 역사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특히 그렇다.

◆우크라의 나토·EU 가입 영향은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국민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주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는 나라다. 지난 1992년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력하고 2003년부터 유럽연합(EU) 가입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다양한 정치적 갈등과 요구로 인해 진전이 더뎠다. 이번 갈등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EU에 통합되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잠재적 이점을 부각시켰다.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많겠지만, 유럽인 입장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의 NATO 및 EU 회원 가입은 지역 안정에 기여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더 안정적인 정치·경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름 성공적으로 러시아를 몰아내고 NATO와 EU 가입을 향해 신속하게 움직인다면 러시아도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NATO 군이 우크라이나에 배치되는 등 강 대 강 대치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이 상황은 오히려 그간 반복돼온 보복 조치를 완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와 러시아 우크라이나인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대화의 기회, 관찰자 기능 신설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교착상태로 인한 상당한 비용이 수반될 수 있지만, 이런 교착상태가 러시아와 관련 당사자 간의 더 건강한 관계를 위한 길을 열 수 있다는 분석이다.

NATO 관점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의 가입은 지역 안정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평화유지군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장기적으로 많은 인구를 기반으로 한 번영과 식량 자원·가스 매장량에 대한 쉬운 접근 등의 혜택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가치는 유럽 전체에 이익이 될 경제적·정치적 안정성의 증가에 있다.

◆“유럽연합의 입장 전환 필요”

우크라이나의 통합을 넘어 러시아-EU-NATO 간의 건전한 관계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하기 보다 러시아를 파트너로 참여시켜야 한다. 이번 분쟁의 가장 좋은 ‘해피엔딩 시나리오’는 유럽연합이 러시아의 우려를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세계를 위한 통합된 비전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원하는 건 피를 불러올 뿐 강제로 획득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동시에 러시아를 건설적인 대화와 협력의 테이블로 초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우크라이나 분쟁은 근본적인 분쟁 원인을 해결하고 평화적 수단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주권을 행사하고 NATO와 EU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열망은 역으로 지역 안정과 번영하는 미래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가 기회로 전환되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러시아의 관심사를 고려하고 파트너로 참여시켜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오로지 협력을 통해서만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통일된 비전을 구축할 수 있다.

진지에서 식사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바흐무트=AP/뉴시스] 22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전선 진지에서 한 우크라이나 병사가 빵을 먹고 있다. 2023.05.23.
진지에서 식사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바흐무트=AP/뉴시스] 22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전선 진지에서 한 우크라이나 병사가 빵을 먹고 있다.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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