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같이
국경 탓에 전쟁 등 각종 문제”
국가 간 경계선 허무는 유럽
주민등록 만으로 거주 가능
“개방성, 국가·인종 다툼 해결”

편집자 주

최근 전쟁난민 등 전 세계 난민이 1억명을 넘어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내전이나 정치적 박해 등으로 이주민이 늘어나면서다. 세계 인구 80명 중 1명은 난민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주민이나 난민에 대해 무관심에 가까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난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와 이듬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입국 등을 겪으면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사회적 공감과 함께 분위기 전환이 이뤄졌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유럽에서는 많은 장벽이 사라지고 있다. 특정 국가 내에서 이사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주민등록 절차만 이행하면 될 정도로 간단해졌다는 말도 나온다. 유럽 내 내가 거주할 수 있는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유럽인의 입장에서 현지 분위기를 담아 벨기에 국적 위르겐 게르마이스(Jurgen Germeys)가 기고글을 보내와 본지는 이를 번역해 게재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00일 넘어선 8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프셰미실 인근 메디카 국경 검문소에 육로 입구가 전쟁 초기 모습과 다르게 한산한 모습이다. (출처: 메디카/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00일 넘어선 8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프셰미실 인근 메디카 국경 검문소에 육로 입구가 전쟁 초기 모습과 다르게 한산한 모습이다. (출처: 메디카/연합뉴스)
위르겐 게르마이스
위르겐 게르마이스

 

이 글이 너무 이상적인 내용이라고 여겨진다면 먼저 용서를 구한다. 다만 서두에서부터 인류의 미래는 유럽이 연출하고 있는 ‘이주의 자유’에 달려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두 대륙에서 살면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 다른 나라로 ‘영구적으로’ 이주하면서 모든 관청의 번거로운 절차를 모두 처리했었다는 점에서 필자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에 필요한 노력이 만만찮았지만 그로부터 얻은 이점은 그 수고를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처음으로 대륙 간 이주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간 쌓아온 경력, 가족의 편익 등을 스스로 송두리째 뿌리치고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다. 아마도 그 점이 두려울 것 같다.

어떤 나라든 그 정부는 외국인을 자국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 돈이 많고 고학력자라면 훨씬 이민이 쉬워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부와 지역주민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기가 꽤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경의 실체다. 국경은 다른 경계보다 더 불안감을 증가시킨다. 어떤 나라로 이주하고 싶든 그 나라의 일부가 되는 건 참으로 힘겨운 싸움이다.

유럽인으로서 현재 유럽에서는 각종 장벽이 깔끔하게 제거됐다고 본다. 내가 거주할 수 있는 유럽 내 국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해당 국가 내에서 이사하는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주민등록 절차만 이행하면 될 정도로 간단하다. 손쉽게 지방 정부에 등록, 세금 납부를 위한 주소지를 확실히만 해주면 된다. 정신건강이나 경제적 이유에 맞춰 가장 적합한 거주지를 찾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유럽은 미국이나 남미, 러시아,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 견줘 매우 작은 규모다. 사실 호주가 더 작지만, 호주는 여러 나라로 나뉜 유럽과 달리 하나의 국가이기에 작다고 보긴 어렵다. 따라서 유럽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게 실제로 거리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루에 자동차로 여러 국가를 횡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람이 여행하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국경을 공유하기로 결정한 ‘주권 국가의 수’다.

국경은 항상 문제를 일으켰다. 유럽인들은 국경이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가 몇 ㎢를 통제할 수 있는지를 놓고 싸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에 대한 좋은 예다. 국경을 없애면 서로 전쟁을 벌일 동기도 대부분 사라진다. 국경은 세금이 어느 정부로 가는지 결정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민족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지역 문화에는 사실 국경이 필요하지도 않다. 지역 문화는 도시별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으며 각 도시는 고유한 특성과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국경은 사람들이 이를 주장하기 위해 그린 가상의 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그룹이나 특정 개인이 지금 지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당연한 말이다. 지구가 둥근 공의 형태임을 고려할 때 우리가 권리를 주장하는 건 음식이나 원자재 같은 자연환경이 제공하는 자원들이다. 따라서 국경은 문화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경제적, 그러니까 세금 등 부차적인 것 때문에 생겨나는 요소다.

그러면 사람들이 거주하고 일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할 자유를 늘리면 실제로 현재 사람들이 겪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인구 과잉이 문제가 된다면 한적한 지역으로 이동하면 된다. 빈곤 문제 역시 사람들이 노동력이 필요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일자리를 찾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거주 지역의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날씨가 좋은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혐오자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우리는 이 모든 외국인들을 우리나라에 데려올 것이다. 아마도 이런 개방성이 외국인 혐오증도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처럼 다른 문화와 사물을 보는 다른 방식에 대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아이디어와 문제 해결 방법을 서로 연계한다면 더 풍부한 미래가 보일 것이다.

문화적 우선순위가 다른 외국에 살면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한다는 교훈을 개인적으로도 배웠다. 한국에서 보낸 10년 동안 필자는 가족의 소중함, 가족과 친구들의 발전을 위한 희생 등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다. 스페인에서 보낸 7년은 시간을 통제하고 순간을 즐기고 환경에 감사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줬다. 이제 우리 가족은 체코공화국으로 이주했다. 프라하가 우리 가족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는지 궁금하고 너무 기대된다.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살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길 권한다. 당신의 결정을 지지한다. 적응하기 벅차다거나 앞으로 나아가는 데 불안이 다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설정한 보이지 않는 한계를 넘어 성장하길 꿈꾼다.

그리고 다음에 투표할 때는 국경을 공유하기 위해 다른 국가와 협력할 생각이 있는 정치인에게 투표하길 바란다.

[용어설명]

◆거주이전의 자유

각자가 원하는 장소에 주소나 거소를 정하고 또한 이를 이전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거주이전의 자유는 강제노동관계를 기초로 했던 봉건체제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상업 및 화폐경제의 발달과 함께 사실상 인권의 하나로 인정하게 됐다. 이후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바이마르헌법(Weimar Verfassung), 이탈리아 헌법 등 각국 헌법은 경제적 자유의 하나로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게 됐다. 우리나라도 헌법에서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문화해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거주·이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은 법률로써도 제한할 수 없다. 따라서 거주·이전에 대한 허가제 등을 규정한 법률은 위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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