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주최로 비공개로 진행된 종교인 과세 관련 간담회에서 간담회를 마친 개신교계 대표자가 퇴장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47년 끌어온 ‘종교인 과세 논쟁’ 이번엔 국회 문턱 넘을까
총선 앞둔 정치권 눈치보기 급급… 정부 “이해관계자 설득”
개신교계 이번에도 엇갈린 반응… 불교·천주교 “납세 준비”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재추진키로 하고 세법 방침을 발표했다. 정부는 세법상 종교소득을 규정하고, 소득이 많은 종교인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합법적으로 과세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종교계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개신교 일부에선 이번에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표를 의식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종교계의 눈치를 보며 세법개정안에 대해 몸을 사리고 있고, 정의당만 종교인 과세를 당론으로 정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초 종교인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으며, 대다수 종교계가 종교소득을 시행령보다는 법률로 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이를 반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종교소득은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 안에 종교인 소득 항목을 신설해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부과되는 세금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47년을 끌어온 종교인 과세 논란이 이번에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종교인 소득 수준에 따라 과세

현행법상 종교인 과세 방식은 종교인의 소득에서 일괄적으로 필요 경비를 80% 제외한 나머지 소득 20%에만 세금을 매긴다. 소득이 연 5000만원일 경우 경비 4000만원(80%)을 뺀 1000만원(20%)에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종교인의 소득이 천차만별인데 과세 체계가 지나치게 단편 일률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소득 종교인일수록 경비 인정 비율을 줄이기로 했고, 소득이 4000만원 미만이면 지금처럼 필요 경비 80%를 인정하지만 4000만∼8000만원이면 60%만 인정키로 했다. 또 8000만∼1억 5000만원은 40%, 1억 5000만원 초과 시에는 20%만 인정한다.

기획재정부는 세금을 의무적으로 소득에서 원천징수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종교단체는 1년에 한 차례 소득을 자진신고해 세금을 내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종교계 대다수 ‘찬성’

종교인 과세 재추진 방침에 종교계는 대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개신교계 일부에선 법으로 규제하지 말고, 종교인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며 반대하고 나섰다.

불교계를 대표해 간담회에 참여한 대한불교조계종은 종교인 과세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과 함께 “정부 방침에 따라 납세를 위한 준비작업을 착실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남전스님은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과세하려면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종교별로 다른 성직자들의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조계종단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추진하는 과세 방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정부 방침에 맞춰 납세를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천주교는 1994년부터 납세를 공식 결정하고, 신부·수녀에게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있다. 정부의 과세 방침을 환영한 천주교는 국가가 정한 법률에 따라 납세의무를 준수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관계자는 “천주교의 입장은 일관되게 ‘국민의 일원으로 근로소득세를 똑같이 낸다’는 것”이라며 “이미 1994년부터 국법에 따른 납세 방안을 정리하고 적용해 왔다”고 말했다.

신부와 수녀들은 사제 생활비, 성무 활동비, 미사 예물, 상여금, 휴가비, 기타 명목으로 교구나 본당에서 지급하는 금액 등을 사제 개인의 소득에 포함시켜 소득세를 내고 있다.

◆또 개신교 발목?… 눈치 보는 정부·국회

개신교계는 이번에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진보성향에서는 찬성 입장을, 보수성향에서는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종교인 과세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종교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납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환영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종교인의 소득을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과세한 것에 대해서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개신교계 일부에서는 종교인 납세를 법으로 규정해 의무화하는 것보다 종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박종언 목사는 목사들과 달리 스님과 신부들은 보살펴야 할 가정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종교인 과세를 법제화할 경우 다른 종교(인)와의 관계에서 평등과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종교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목사는 “종교인 과세를 법제화해 강제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자발적 납세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번 세법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현행 시행령에 근거해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바로 과세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국회에 가져가는 것 자체가 ‘보여 주기식 행정’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가 종교계 일부에서 반발하는 종교인 과세를 처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종교단체와 국회 등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겠다. 종교인 과세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일부 종교단체를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종교인 과세에 대해 공감하고 있고 여론도 동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7일부터 오는 26일까지 20일간 입법예고 기간과 9월초 국무회의 상정을 거쳐 9월 11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를 통과할 경우 2016년 1월 1일 이후 발생한 종교인의 소득분에 대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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