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법등스님(전 조계종 호법원장)이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종회의장 성문스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총무원장 선거법개정안인 ‘가칭 염화미소법’을 제안했다. 자승스님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종정스님 추천이 ‘총무원장 선출’ 최적의 선거제도”
법등스님, 현 선거법 금권선거·계파정치 등 폐해 심각
자승 3선 의혹 경계… 직선제 주장 개혁세력 반발 예상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조계종이 직선제를 사실상 포기하고 ‘가칭 염화미소법’이라는 총무원장 선거법개정안을 제안했다. 종도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직선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간선제를 계속 유지할 뜻을 내비친 만큼 파장이 예상된다.

조계종이 제안한 ‘염화미소법 선거제’란 현행 총무원장 선거제도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선거인단이 철저한 검증을 통해 3인의 후보자를 추천하고, 이를 종단 최고 어른인 종정 스님이 직접 추천하는 방식을 말한다.

선거 때마다 수십억 원이 오간다는 금권선거 논란, 종회(종단 입법기관, 국회격)내 정치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계파(종책모임) 간 갈등, 선거 밀약(주지 또는 주요 직책 약속) 등 각종 의혹으로 몸살을 앓는 조계종이 이번에 제시한 새 선거제를 통해 종단 안팎의 불신을 타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총무원장 직선제 사부대중 연대회의’를 이끈 법등스님(전 조계종 호계원장)은 지난 10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총무원장 선거법개정안을 공식 제안했다.

‘가칭 염화미소법’이라는 총무원장 선거제를 제시한 법등스님은 지금까지 간선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직선제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또 직선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논의 기구인 ‘총무원장 직선제 사부대중 연대회의’까지 만들었던 그가 이해당사자들의 압력과 종단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간선제를 받아들였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선거제 폐해 극심… 개선 시급해”

이를 의식한 법등스님은 새 선거법 제안에 앞서 총무원장 직선제 포기를 참회했다. 스님은 “총무원장 직선제를 주창해 온 장본인으로서 종단 현실에 부딪혀 직선제를 포기하게 된 것에 대해 종도 여러분께 참회한다”면서 “종단의 시절인연이 총무원장 직선제를 실현하기에는 역부족인 점이 많았던 게 사실이었다. 사부대중 연대회의의 활동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법등스님은 “계파정치, 금권선거, 선거후유증 등을 해소하고자 새 선거제 도입을 위해 노력해 왔다”며 “작금의 총무원장 선거제도는 폐해가 극심해 종단의 대외적인 위상을 실추시키고 있는 만큼 반드시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님이 제안한 새 총무원장 선거제도인 ‘가칭 염화미소법’은 조계종 총무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자 검증을 위한 선거인단을 꾸리고, 선거인단은 총무원장 후보자 3인을 투표로 선정한 후 종정 스님이 추천하게 된다. 선출 1주일 후 원로회의 의원, 본사 주지, 종회의원 등이 배석한 자리에서 종정 스님이 최종 낙점해 총무원장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현행 선거제로는 조계종 총무원장은 투표권을 가진 선거인단 스님들의 간접 투표로 선출된다. 선거인단은 국회의원 격인 중앙종회 의원 81명과 조계종 24개 교구본사의 교구종회에서 10명씩 선출한 240명 등 총 321명으로 구성된다. 321명의 선거인단이 선거 당일 투표해 최다득표자가 총무원장으로 선출된다.

◆자승 “승단 전통 존중되는 제도 찾길”

법등스님의 제안에 대해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승단 고유의 전통이 존중되는 합리적인 제도를 찾는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중앙종회의장 성문스님은 “큰 틀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 입법에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자승스님을 비롯한 종회의장 성문스님, 불교광장 회장 지홍스님, 삼화도량 대변인 장명스님, 중앙종회 법제분과위원장 초격스님 등이 참석했다. 종단 입법기관인 중앙종회 핵심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함에 따라 새 선거법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법등스님은 “이 같은 선거방식은 현행 간선제도를 유지하면서 후보자들을 보다 엄정하게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며 “종정 스님이 최종적으로 신임 총무원장을 염화미소(추첨)한다는 점에서 작금의 종단 풍토에서는 최적의 선거제도라고 자부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종단 운영이 가능하고 아울러 중앙종회 내 종책모임도 종책연구와 개발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법등, 3선 시도 의혹 “자승스님과 무관”

법등스님은 염화미소법 제안과 관련해 종단 안팎의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며 민감한 입장을 보였다.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 3선 시도 의혹에 대해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3선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를 위해 법등스님이 앞장서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며 “단연코 말씀드리지만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이번 제안은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한편 무소불위(못 할 일이 없음)의 권한을 가진 조계종 총무원장은 불교대통령으로 불린다. 조계종 종헌에서 보장하는 총무원장의 역할과 권한은 어떠할까. 종헌 54조 1항은 ‘총무원장은 본종을 대표하고 종무행정을 통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순히 ‘행정 수반’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

◆염화미소의 유래

부처가 영취산에서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부처가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모인 사람들에게 보이자 제자 중 마하가섭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로써 부처가 마하가섭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했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염화시중이라고도 한다.

연꽃은 탁한 연못에서 피어나는 데 꽃은 아름답고 깨끗하기 그지없다. 즉 부처님은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오히려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가르침을 보이셨고, 제자 마하가섭은 그것을 깨닫고 웃음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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