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죄‧반성’ 이번에도 없어

오염수 현장 한국 시찰 수용

‘북핵억제’ 한미일 협력도 강조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3.5.7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3.5.7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일 취임 이후 첫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3월 일본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한국을 찾아 셔틀외교를 본궤도에 올렸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동시에 일본 측에만 유리한 방한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일갈하는 견해도 나온다.

실제로 일제 강제동원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는 없었고, 후쿠시마 오염수 현장 시찰 수용은 방류를 위한 명분쌓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데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합류를 요구하는 등 죄다 일본 측과 연관된 문제라는 것인데 이 같은 엇갈림에 대한 간극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남은 과제가 될 전망이다. 

◆기시다, 사견 전제… 강제동원 “가슴 아파”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전날(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열고 각종 현안을 논의했다.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강제동원 해법, 한국 전문가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현장 시찰, 반도체 공급망 등 한일 공조, 북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분야 등이 골자다.

먼저 기시다 총리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 직접 사과를 하는 등 얼만큼 호응을 해 올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는데 예상대로 관련 언급은 없었다. 다만 개인적인 감정 표출은 있었다. 그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지만 이번에도 사죄의 표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대신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고통스럽고 슬픈 생각을 갖게 된 데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는데 그마저도 사견임을 전제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일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가 일본 측의 시늉만 낸 성의 있는 호응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이런 과거사 언급을 진일보한 것으로 여기며 감사 표시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현장의 한국 전문가 시찰 수용도 자칫하면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 전문가의 실효적인 검증 권한 없는 시찰단에 그친다면 오염수 방류에 명분만 쥐어 줄 수 있어 일면 성과로 보이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단 윤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관련 전문가 시찰단을 23∼24일 파견한다. 이번주 후반 열릴 것으로 전해진 국장급 실무협의에서 시찰단 규모와 세부 일정 등이 조율될 것이라는 게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함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공조를 강화하기로 한 것도 당장 우리 소부장 업체가 아닌 일본 업체를 윤 정부가 자진해서 기회를 만들어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럼에도 기시다 총리는 “아직도 한국을 ‘그룹 에이(A)(화이트리스트)’로 추가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만 밝혔다.

◆한미 핵협의그룹에 日참여 가능성

당초 기시다 총리가 외교 프로토콜(외교용 언어로 약속이나 규율)을 어겨가면서까지 급히 한국을 찾은 건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많았는데 관련 내용도 확인됐다.

윤 대통령이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핵협의그룹 신설에 합의한데 이어 확장억제 논의에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기시다 총리의 방한 목적이 이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억제를 목표로 한 안보협력에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다.

핵협의그룹에 대한 실무적인 장치를 위해 미리 제안하려 왔고, 윤 대통령이 이에 화답했다는 설명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왔을 때 한미 간 얘기가 됐던 핵협의그룹에 대한 것들을 한미일이 함께 참여하는 등의 실체적인 기구 형태로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보고자 하는데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도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일본 측이 타진해 이뤄졌다고 전한 바 있어 이 같은 해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한미 NCG 창설과 관련해 일본 등이 참여하는 ‘다자기구’ 발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건 이 때문이다. 호주나 대만 참여 가능성도 나오고 있는데, 최소한 일본만이라도 우선 참여해 북한의 실제 핵 위협을 국제적으로 이슈화해 중국과 러시아까지 압박해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이 경우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동아시아에 생겨나는 것이라 한미일 대 북중러 간의 대립 구도 역시 더욱 선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밀착을 북중러가 예의주시하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경계감도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그저 한미 간 협의체일 뿐이었는데, 일본이 고개를 디밀어 미국 정부에게는 한층 부담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즉 안보협력을 기화로 내세운 아시아판 새로운 나토가 되면 한미일 군사동맹 삼각체제 가속화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결국 우리 입장에선 통일이 아닌 ‘분단의 고착화’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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