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예산으로 가능한 일
20년 전망하는 토론장 열어야”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이 ‘불교 중흥’을 내세우며 추진하는 역점 사업이 스님과 불자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모양새다.

조계종은 ‘천년을 세우다’라는 이름을 내걸고 경주 남산 열암곡에 엎어진 마애불상 바로 세우는 일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과거 천년의 무너진 불교문화를 회복하면서 미래 천년을 준비한다는 취지를 반영한다. 조계종은 인재 양성, 명상센터 건립, 선 수행 보급 등을 통해 불교 중흥과 포교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스님과 불자들 사이에서 불상을 세우는 일과 불교 중흥 사이에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조계종 전 불학연구소장 허정스님은 지난 2일 ‘쓰러진 불상을 세우는 일보다 중요한 일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열암곡 마애불상을 세우는 일이 ‘불교 중흥’이요 ‘우리 모두의 본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설명하지만 그것에 동의하는 불자와 국민들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천년을 세우다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열암곡 부처상의 모형이 세워져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천년을 세우다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열암곡 부처상의 모형이 세워져 있다. (출처: 연합뉴스)

앞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지난달 19일 천년을 세우다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엎드린 부처님을 바로 모심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며 우리 모두의 본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허정스님은 “불상을 세우는 일이 한국불교를 세우는 일이라는 인과관계가 어떻게 성립하는가”라고 지적했다. 또 허정스님은 “‘천년을 세운다’라는 타이틀 없이도, 돈을 걷지 않아도 문화재청의 예산으로 얼마든지 불상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허정스님은 “무엇이 불교 중흥의 길인지 대중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당장 한국불교 20년을 전망하고 대비하는 공개 토론장을 만들라”고 제안했다.

불교계 시민단체인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윤덕만 사무총장은 “21세기 문화 대국이 되려면 석상을 일으켜 세울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덕만 사무총장은 “(조계종이) 바로 보지 못하니 석상을 세워서 문화 대국을 만들자고 하고, 부처님을 바로 모신다고 하며, 우리 본성을 회복하자고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조계종은 천년을 세우다 사업뿐 아니라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이끈 ‘상월결사 인도순례’에 대해서도 불교 중흥을 이룬다는 취지에 공감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지난 3월 23일 인도 순례를 마치고 귀국한 날 열린 대규모 회향식을 두고 조계종 스님들의 반대 목소리가 많았다.

허정, 도정, 진우스님이 조계종 스님들에게 문자메시지 3983건을 발송해 인도 순례 회향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324명 중 86.1%는 ‘인위적인 인원 동원은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일이며 불교 중흥의 길도 아니므로 반대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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