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휴전’에도 교전 이어져
인접국 차드에 2만여명 피난
정부군 “각국 외교단도 철수”
미 외교관 항공기로 먼저 철수
28명 안전확보 한국, 곧 철수

22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과 다른 국적의 국민들이 수단 내전을 피해 사우디 해군 함정을 통해 제다항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과 다른 국적의 국민들이 수단 내전을 피해 사우디 해군 함정을 통해 제다항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최근 수단에서 독재자를 몰아냈던 장군들끼리 군 통수권을 놓고 권력다툼이 벌어지면서 4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각국 외교단을 비롯한 국민들의 수단 탈출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이슬람 명절인 ‘이드 알피트르’를 맞아 사흘 동안 ‘이드 휴전’에 합의했지만, 곳곳에선 여전히 총소리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AP 통신에 따르면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군벌 간 전투가 지속되자 이날 새벽 미군이 6대의 항공기를 투입해 미국 외교관들과 그 가족을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수단 정부군이 전날 “주요 공항을 포함한 수도에서 교전이 지속함에 따라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외교관들을 군용기로 철수시키는 방안을 조정하고 있다”고 발표한 직후다.

이날 정부군에 반기를 든 신속지원군(RSF)도 수단에 체류 중인 자국민을 대피시킬 수 있도록 모든 공항을 부분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수도 하르툼 등에서 무력 분쟁에 발이 묶인 현지 주민들도 단전·단수·식량부족을 겪다가 대규모 피란길에 올랐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지금까지 최소 1만명에서 2만여명에 달하는 수단인들이 인접국 차드로 국경을 넘어 피난했다.

(하르툼[수단] 로이터=연합뉴스) 북아프리카 수단의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 간 유혈 충돌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17일(현지시간) 하르툼 공항에서 항공기가 불타며 검은 연기가 불타오르고 있다. 지난 15일 발생한 유혈 사태가 계속되며 사망자가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2023.04.18
(하르툼[수단] 로이터=연합뉴스) 북아프리카 수단의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 간 유혈 충돌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17일(현지시간) 하르툼 공항에서 항공기가 불타며 검은 연기가 불타오르고 있다. 지난 15일 발생한 유혈 사태가 계속되며 사망자가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2023.04.18

식량을 지원하는 유엔 기구인 WFP에서는 이번 군벌 간 전투로 직원 3명이 목숨을 잃고 2명이 중상을 입은 바 있다. 이어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직원 1명도 수단 중부 도시 엘오베이드에서 차량에 가족을 태우고 이동하다가 군벌 간 교전 속 총격을 당해 숨지면서 4번째 유엔 직원 희생을 맞이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무역항인 제다에도 수단 동부의 항구도시 포트수단에서 배를 타고 내전을 피하려는 각 나라 국민들이 도착했다. 사우디 외무부에 따르면 사우디 국민 91명이 쿠웨이트·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튀니지·파키스탄·인도·불가리아·방글라데시·필리핀·캐나다·부르키나파소 등 12개국 국민 66명과 함께 제다에 도착했다. 외국인 중에는 외교관과 정부 관계자들도 일부 포함됐다.

정부군을 이끄는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은 “사우디아라비아 외교관들이 이미 수단항을 떠나 항공편으로 본국으로 돌아갔다”며 “요르단 외교관들도 같은 방식으로 철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요르단은 수단에서 자국민 300명의 철수를 개시했다.

지난 15일부터 수단 수도 카르툼에서 벌어진 정부군과 현지 군벌인 RSF는 무력 충돌을 이어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교전 발발 현재까지(20일 기준) 413명이 사망하고 3551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21일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에서 C-130J 수송기가 수단 교민철수 해외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1일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에서 C-130J 수송기가 수단 교민철수 해외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영국·일본·스위스·스웨덴·스페인과 유엔 등은 현지 자국민과 직원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군용기를 인근 지역에 대기시키는 등 필요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수단의 하늘길이 다시 개방되고 공항까지 이동 과정의 안전이 확보되는 대로 자국민들을 철수시킬 방침이다.

◆우리나라 대피작전은 어떻게?

수단 내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은 하르툼의 현지 대사관에 대피한 상황으로 모두 안전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국민은 총 29명으로 확인됐으나 수단 국적 1명이 대사관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철수 경로에 대해선 배를 타고 이동할지 공항에서 군 수송기를 타고 벗어날지 유동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군 특수전사령부의 707 대테러 특수임무대, 공군 공정통제사(CCT) 등 50여명을 태운 공군 C-130J 수송기를 수단 인근 지부티 미군기지로 보낸 데 이어, 오만 살랄라항에 있는 청해부대를 수단 인근 해역으로 급파했다.

현지에 도착한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707 대테러 특수임무대와 공군 공정통제사(CCT), 조종사·정비사·경호요원·의무요원 등 50여명은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수송기에 탑승시켜 최종 목적지인 국내로 이송하는 작전을 펼치게 된다.

국방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플랜B’도 준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오만 살랄라항에 있는 청해부대도 수단 인근 해역에 급파하라고 지시했다. 해적 소탕이 목적인 청해부대는 4000t급 구축함과 해상작전 헬기, 특수전전단 등으로 구성된 정예 부대다.

외교부는 최영한 재외동포영사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9명 규모의 신속대응팀을 별도 항공편으로 지부티에 파견했으며 수송기로 도착한 우리 군 병력과 함께 수단 내 국민 보호와 대피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는 수단 교민 대피와 함께 상황에 따라 주수단한국대사관 철수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벌, 독재자 몰아내고선 권력다툼

이번 전투는 사실상 수단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압델 파타 알 부르한 장군이 지휘하는 정부군과 이인자 격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이 지휘하는 RSF 간의 충돌이다. 두 장군은 근 30년간 수단을 지배해온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뜻을 모았던 전우이기도 하다. 이들은 다시 2021년 10월 쿠데타를 일으켜 수단에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려고 했던 과도정부까지 무너뜨린 바 있다.

[하르툼=AP/뉴시스]막서 테크놀러지가 제공한 위성 사진에 17일(현지시간) 수단 하르툼 국제공항의 항공기들이 파괴돼 있다. 수단 수도 하르툼과 다른 도시들에서 계속되고 있는 압델 - 파타 부르한 장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 등 군부 실력자들 간 교전으로 최소 185명이 사망하고 1800명 이상이 부상했다
[하르툼=AP/뉴시스]막서 테크놀러지가 제공한 위성 사진에 17일(현지시간) 수단 하르툼 국제공항의 항공기들이 파괴돼 있다. 수단 수도 하르툼과 다른 도시들에서 계속되고 있는 압델 - 파타 부르한 장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 등 군부 실력자들 간 교전으로 최소 185명이 사망하고 18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볼커 페르테스 유엔 특사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2023.04.18.

그러나 10만명 규모인 RSF를 정부군에 통합하는 문제와 군 통수권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다. 부르한 장군이 2년 내 흡수될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다갈로 장군은 10년 이상 걸릴 정도로 통합은 어려운 일이라며 맞섰다. 이 RSF는 잔자위드 민병대에서 발전된 조직으로 다르푸르 지역에서 시위대 120여명을 학살하고 인권을 유린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군 통수권을 비롯한 군부 지휘체계 상 각종 사안에 의견이 갈리자 두 장군은 목숨을 건 전쟁에 들어갔다. 정부군은 RSF를 반군으로, 이번 사태를 무장세력의 체제전복 시도라고 규정했다. 동지에서 적으로 갈라선 셈이다. 이로 인해 수단에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라는 민간의 목소리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번 유혈 충돌로 미국과 영국, 유럽 연합(EU)은 군부 양측에 즉각적인 무력다툼 중단을 요구했다. 유엔 사무총장도 두 장군에게 유혈 충돌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들어올 것을 촉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UAE 외무장관들도 삼자 통화를 통해 수단 군부가 민주주의 전환에 관한 합의에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고 사우디 국영 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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