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밤의 모양을 가리키는 말로는 ‘녹두밤, 덕석밤, 빈대밤, 왕밤, 쭈그렁밤’ 같은 것이 있다. ‘녹두밤’은 알이 잘고 동글동글한 밤이고, ‘덕석밤’은 넓적하고 크게 생긴 밤을 이른다. ‘빈대밤’은 물론 알이 잘고 납작하게 생긴 밤이다. 참으로 명명도 재미있게 했다.

밤을 한문으로 율(栗)이라 하며, 밤의 껍질을 율각(栗殼) 또는 율방(栗房)이라 한다. 그리고 깐밤을 율황(栗黃)이라 한다.

“명랑한 이 가을 고요한 석양에 저 밤나무 숲으로 나아가지 않으렵니까?/ 숲속엔 낙엽의 구으는 여운(餘韻)이 맑고 투욱 툭 여문 밤알이 무심히 떨어지노니/ 언덕에 밤알이 고이 져 안기우듯이 저 숲에 우리의 조그마한 이야기도 간직하고/ 때가 먼 항해를 하여 오는 날 속삭이기 위한 아름다운 과거를 남기지 않으려니?”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의 시 ‘추과삼제(秋果三題)’ 중 ‘밤’을 노래한 것으로, 석정(夕汀)다운 목가적(牧歌的)인 시다. 이 시를 대하면 필자는 가을빛이 알알이 영근 고향 공주의 탐스런 알밤이 생각난다. 이제 공주알밤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알려진 공주의 특산물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름난 밤은 평안남도 순안의 관청 북쪽 정원에 있는 밤나무다.

이 밤나무는 조선시대 19대 왕인 숙종(肅宗)의 계비(繼妃) 인원황후(仁元王后, 1687~1757)가 심어 놓은 밤나무다.

인원황후는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이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3대손이며,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 1661~1721)과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딸이다.

일찍이 아버님이신 경은부원군 김주신이 1700년(숙종26) 순안현령(順安縣令)에 부임했을 때 그곳에 따라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정축년(1757, 영조33)에 연신(筵臣)이 그 밤나무에 관한 사실을 아뢰자, 영조임금은 즉시 어제(御製)를 써서 밤나무 가까이에 있는 관아 추녀 끝에다 달게 하시고 밤나무 주변에 담을 쌓고 문을 해 달았다.

그리고 이 밤나무에서 수확한 밤은 모두 진상하도록 했다. 여러 해가 지나 그 밤나무는 고목이 되고 밤알이 떨어져 그 주변에 저절로 움이 터 한 그루의 밤나무가 네 그루가 됐다. 1787년 정조가 담장 안에 작은 정자를 세우고 이곳에 어제를 모시고 율원정(栗園亭)이라는 편액을 써 붙여 놓았다(홍재전서 권14 ‘율원정기’ 참조). 그리하여 이 밤나무는 천만년 동안 보배로운 나무가 돼 영원토록 모든 백성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게 됐다.

율원(栗園)은 왕가(王家)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율목봉산(栗木封山)이라는 말이 있는데, 옛날에 신주(神主)와 그 궤(櫃)를 만드는 데 쓰려고 문중에서 종중산에 밤나무를 심고, 그 산을 봉해 잡인(雜人)이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의 재료도 대개 밤나무로 했다. 백제 무령왕릉(武零王陵)의 목관, 경주 천마총(天馬塚)의 목곽도 이 밤나무다. ‘밤나무뿌리’는 신주(神主)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밤나무뿌리’가 이런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물론 밤나무로 신주를 만들기 때문이다.

1707년 봄에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의 제실인 모리재(某里齋,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강선대길 96-326)를 중건해 작헌례(酌獻禮)를 거행했다고 했고, 그 주에 “유생들이 3월과 9월 상정일(上丁日)을 정식(定式)으로 삼아 일을 거행했다. 동계(桐溪)선생이 손수 쓰신 숭정시(崇禎詩)의 족자를 봉안하고, 건치(乾雉)·율황(栗黃)·청저(菁葅: 무청을 소금에 절여 담근 김치)·미궐(薇蕨 고비)·출주(秫酒, 차조, 찰벼, 찰수수 담은 술로 황주의 옛말)로 제향하니, 대개 산 밖에서 나는 물건은 쓰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다(입재집, 立齋集).

이를 보면 재실(齋室) 제물(祭物)은 산(山) 밖에서 나는 것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영주의 소수박물관에 보관된 조선 중기 문신이며 학자인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의 홀기(笏記: 제례의 절차와 방법을 적은 문서)의 진설도에 ‘율황’이 나오는데, 이 율황은 껍질을 벗긴 밤을 위아래로 납작하게 썰고 가장자리를 칼로 쳐서 깍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생률(生栗)이라고도 한다.

조선후기 학자인 유장원(柳長源, 1724~1796)의 상변통고(常變通攷)에 율황이 보이며, 1783년(정조 7) 교정청에서 사도세자와 헌경왕후의 사당인 경모궁에서 지내는 제사의 의식과 절차 등을 기록한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와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에도 역시 율황이 나온다.

우리말에는 ‘밤’을 음식의 재료로 한 말이 많다. ‘밤경단, 밤다식(茶食), 밤단자, 밤떡, 밤밥, 밤설기, 밤암죽, 밤주악, 밤죽, 밤즙, 밤초’ 같은 말이 그것이다. 밤으로 많은 음식을 만들어 먹은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먹어 보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름조차 생소한 음식도 여럿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음식문화가 변해 말이 낯설어진 것이다.‘밤경단’은 경단의 고물을 밤으로 한 것이다. 경단은 찹쌀가루나 찰수수 따위의 가루를 반죽해 밤톨만한 크기로 둥글둥글하게 빚어 끓는 물에 삶아낸 후 고물을 묻히거나 꿀이나 엿물을 바른다. ‘밤단자(團餈)’는 단자(團子·團餈) 겉에 황밤가루를 꿀에 버무려 묻힌 것이다. ‘단자’는 경단과 비슷한 음식이다. 이는 찹쌀가루를 반죽해 끓는 물에 삶아 잘 으깬 다음 꿀에 섞은 팥이나 깨로 소를 넣고, 둥글둥글하게 빚어 다시 꿀을 바르고 고물을 묻힌 떡이다. 이는 중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일본의 대표적인 동화 ‘모모타로(挑太郞)’에도 수수 단자인 ‘기비당고’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 보아 단자는 동양 삼국의 음식이고, 경단만이 우리 고유의 음식인 듯하다. ‘밤설기’는 밤을 넣어 만든 설기로, 쌀가루에 밤을 섞어 넣고 꿀물을 내려 켜켜이 시루에 찐 떡이다.

‘밤암죽’은 쌀과 밤을 갈아 넣어 묽게 쑨 죽이다.‘밤주악’은 찹쌀가루 아닌 황밤가루로 만든 웃기떡이다. ‘주악’은 찹쌀가루에 대추 따위를 섞어 꿀에 반죽하고, 계피·생강·깨·잣가루 같은 것을 꿀에 버무려 소를 넣은 다음 송편처럼 만들어 기름에 지진 웃기떡이다. 이는 한자어로 각서(角黍), 조각(糙角)이라 한다. ‘밤죽’은 밤을 삶아서 거른 물이나, 밤 가루를 푼 물에 쌀을 넣고 쑨 죽인 율자죽(栗子粥)을 가리킨다. ‘밤즙’은 날밤을 물에 담갔다가 맷돌이나 강판에 갈아서 낸 즙을 익혀서 묵처럼 만든 음식이다. ‘밤초(炒)’는 밤으로 만든 과자다. 황밤이나 생밤을 푹 삶아 꿀을 넣고 조린 뒤 으깨어 계핏가루와 잣가루를 뿌려 만들거나, 삶은 밤을 벗겨 꿀을 넣고 푹 끓인 다음 으깨어 계핏가루를 뿌려 만든다. 이를 보면 우리 민족은 꽤 음식 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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