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우리가 흔히 먹는 채소 중에 정(情)을 오래 유지 시켜 주는 정구지(精久持)가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오줌에 정액이 섞여 나오는 증상(유정)이 나타날 경우 부추씨를 살짝 볶아 먹으면 치료에 도움이 되며, 허리와 무릎의 기운을 따스히 하고 양기를 강화시켜 준다”라고 적혀 있다. 부추 자체에 대해서는 “온기가 가장 강한 식물이라 상시 먹는 게 좋은 음식”이라고 했다.

중국에서는 양기를 돋우는 풀이라 해서 ‘기양초(起陽草)’ ‘장양초(壯陽草)’ ‘파옥초(破屋草)로 불렀으며 실제로는 황화알릴이라는 정력증진과 비뇨생식기에 도움되는 성분이 들어있다.

정구지가 정력에 좋으니 이 풀을 남편이 먹으면 일하러 안 가고 집에서 마누라랑 뒹구느라 게으름뱅이가 된다고 해서 게으름뱅이 풀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이 ‘정구지’라는 말은 중국의 효녀조아비문(孝女曹娥碑文)에 나온다. 즉 한자에서 유래된 말로 경남과 충청도 지방에서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조선 숙종 때인 1719년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日本)에 다녀온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이 쓴 기행록 ‘해유록(海游錄)’ 6월 6일 자를 보면 동래(東萊) 부산성 서쪽 큰 바다 위에 있는 영가대(永嘉臺)에서 해신(海神)에게 기도할 때 ‘미나리김치’ ‘무김치’ ‘죽순김치’와 함께 ‘정구지김치’가 제물로 올려 졌다고 나온다.

아마 이 당시에도 경상도에서는 부추를 정구지라고 칭한 것 같다.

‘정구지’를 ‘솔’이라고도 부르며 표준어로 ‘부추’라고 하는데, 한문으로는 ‘구채(韭菜)’라고 한다. 중국어도 ‘韭菜’라고 쓴다.

‘부추’는 ‘구채(韭菜)’가 바뀐 말로, ‘ㄱ’에서 ‘ㅂ’으로 바뀌고 ‘채’가 ‘추’로 바뀌어서 그런 것이다. 채(菜)나 초(草) 따위 한자어들은 중부 방언에서는 죄다 추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데, 고추가 고초(苦草)에서 바뀐 것이나, 상추가 생채(生菜)에서 바뀐 것이 이와 비슷하다. 부추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 같다.

중국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이미 부추가 채소로서 기록돼 있고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때 도입됐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기록에 나타난 것은 고려 고종 때인 1236년 저술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이다.

태조 4년 1395년 윤9월 27일 종묘제에 헌관 김사형 등이 서계(誓戒)를 했는데, 서계(誓戒)는 국제(國際)를 행할 때 집사관(執事官)이 의정부에 모여서 서약하던 일이다. 그 내용은 “함부로 술을 마시지 말고, 파·부추·마늘·염교를 먹지 말며, 조상(弔喪)하거나 문병(問病)하지 말고, 음악을 듣지 말며, 형벌을 행하지 말고, 형살 문서(刑殺文書)에 판결 서명하지 말며, 더럽고 악한 일에 참예하지 말고 각기 그 직무를 행한다”이다. 즉 서계(誓戒) 때 부추를 먹지 않는 것이다.

세종 1년 기해(1419) 8월 8일에도 예조에서 태조의 성진(聖眞) 봉안하는 의식에도 의식이 있기 전 3일에 당연히 참례할 집사관은 모두 이틀 동안 정침에서 보통 재계하고, 하루는 제사를 올릴 곳에서 정식 재계해야 한다. 대체로 보통 재계에는 일보는 것을 평시와 같이 하나, 오직 술을 과음하지 말고, 파·부추·마늘·달래 등을 먹지 말고, 조상과 문병을 가지 말고, 음악을 듣지 말고, 형벌을 행하지 말고, 처형하고 죽이는 서류를 결재하지 말고, 더럽고 흉악한 일에 참례하지 말 것이라고 했다(조선왕조실록).

뿐만 아니라 산릉 영역(塋域)을 열 때 제의(祭儀)에 부추(韭)가 제물로 올라갔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종 2년(1420) 8월 25일 그 외에 국제(國祭) 때 부추가 제물로 올려져 왔다. 특히 세종 때 ‘부추김치’를 제물로 올렸다는 내용도 보인다.

일본어로는 ‘니라(韮: ニラ)’라고 부른다. 일본인들도 식용으로 곧잘 쓰며 지역과 요리 종류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쓰인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 712년)나 만엽집(万葉集, 759년)에도 부추가 나온다.

부추 중에 제일 맛이 있는 것은 두메부추(Allium senescens)다. 두메부추는 험준한 산악이나 사람이 접근하기 곤란한 바닷가 절벽에 자생하기 때문에 ‘두메’라는 접두어가 붙여져 ‘두메부추’라고 한다. 속명인 ‘Allium’으로 ‘맵다’ 또는 ‘냄새가 난다’는 의미로 ‘Allium’에 속하는 식물체는 모두 매운 향을 가지고 있다.

이 향기 성분은 여러 가지 약효를 가지고 있어 고대부터 식용과 약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초를 생식할 수 있으며, 이른 봄철의 지하부 비늘줄기도 식용하는데, 부추보다 향이 강하고 맛이 뛰어나다.

피를 맑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항균, 항염 작용에 뛰어나다고 한다.

비늘줄기는 진통, 거담효과가 있어 천식, 소화불량, 협심증의 약재로 쓰고 비늘줄기를 찧어 신경통의 약재로 쓰였다고 한다.

부추는 김치나 오이소박이 재료로 또 각종 음식의 양념으로 애용돼 왔으며 생채로 먹거나 살짝 데쳐 무쳐 먹기도 하고 튀김이나 볶음으로도 할 수 있다.

특히 부추를 잘게 썰어 반쯤 구운 돼지고기에 간장을 넣고 후춧가루를 쳐서 함께 섞어 놓고 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조각을 지어 겉에 싸서 구운 ‘부추떡’이 있으며, 이를 구채병(韮菜餠)이라고 한다.

한편 불국사 인근의 떡집에서는 부추의 즙을 이용해 부추떡을 만드는데, 주로 절편이나 가래떡 종류라 하겠다.

원(元)나라의 황제 인종(仁宗: 아유르바르와다)은 여러 해 동안 전쟁에 임하면서 피로가 극심해졌고 정력 또한 약해져서 결국 발기부전의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때 어의(御醫)였던 홀사혜(忽思慧)는 양신구채죽(養腎韮菜粥)이라는 음식을 올려 황제의 병을 치료했다. 양신구채죽이란 양의 콩팥(養腎)을 반으로 자른 후 여기에 양고기와 부추(韮菜), 구기자와 쌀을 넣어서 끓여 만든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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