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스즈메의 문단속’이나 ‘슬램덩크’의 약진을 보면서 일본 문화의 주목 이유에 관한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떤 문화 현상이 일어났을 때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은 다시 재생산하거나 효과를 더 배가시키려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협소하거나 부풀리는 일은 최대한 자제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진단과 분석은 애초에 원하던 결과를 낳는 데 방해물이 오히려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

본래 대중적 콘텐츠가 실패하거나 자취를 감추게 되면 마니아 콘텐츠가 현상을 크게 일으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청춘들이 된다. ‘스즈메의 문단속’이나 ‘슬램덩크’ 현상을 일으켰는데 모두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관객층들이 모두 젊은 세대에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알 수가 있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점이 특정한 상황을 파고들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11일 동안에 160만명을 돌파한 것이 다른 대중 상업 영화를 생각할 때 엄청난 흥행 기록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 가운데 하나라 기존 팬들이 일으킨 스노우볼 효과가 있던 것 치고는 덜하다. 다만, 경쟁작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3일 개봉이래 넉 달간 극장에 걸린 ‘슬램덩크’의 400만 관객 동원도 마찬가지다. 워낙 강력한 오랜 팬덤이 있는 ‘슬램덩크’가 평소 극장을 찾지 않은 30~40대 남성을 끌어들인 바에야 이 정도 흥행성적은 예상 못 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 관객 확보라면 다른 여성이나 20대에도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었다.

더구나 극장계의 비수기라는 점에 대진운도 좋아서 할리우드 영화도 힘을 쓰지 못한 상황이었다. 상대적으로 한국의 작품이 선전하지 못한 점은 더욱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교섭’이나 ‘유령’은 감독의 명성에 비해 기존 작품의 유사 개별화에 그렸다. 자신감은 충만해서 거장같이 태도를 굳혔지만, 결과는 트렌디하지 못했으며 이 시대 청춘들에게 울림을 주지 못했다. 이미 올드해진 명성은 세계적 재난과 무기력,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 방황하는 이들에게 실제적인 행동적 깨달음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감독 개인에게 책임이 지워져서는 곤란하다. 근본적인 원인은 글로벌 OTT의 충격이 낳은 결과였다. 여기에 코로나 19 팬데믹에서 많은 영화가 개봉되지 못했고, 그 사이 트렌디함이 사라졌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글로벌 OTT 드라마가 웬만한 영화보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게 됐다. 애써 비싼 관람료를 내고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새로운 신예 감독과 영화의 제작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기를 기다려 극장 개봉이 이뤄지고 관객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만이 해법인 듯 여겼던 셈이 됐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은 글로벌 OTT에는 없는 장르적 팬덤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관에 발걸음을 할 수 있도록 유인할 수 있었다.

어느새 장르물의 천국이자 강국이 됐다는 한국은 적나라한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이는 영화 ‘기생충’은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 ‘더 글로리’나 다큐 ‘나는 신이다’ 등의 예에서 보듯 다양한 콘텐츠에서 공통적이다. 이들을 주도하는 제작 그룹은 리얼리즘의 수혜를 받은 세대들이다. 하지만 관객은 몽환적 판타지일지라도 적나라한 현실 그 너머 희망과 치유가 필요했다. ‘나는 신이다’에서도 종교를 넘어선 어떤 희망과 치유의 대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은 복수를 하고 목숨을 끊으려 한다. 다만, 다시 또다른 복수에 나서는데, 복수 이후의 희망과 그에 따른 삶의 건설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대부분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특징이 됐다. 과거의 고통에 맴돈다. 기껏해야 복수다. 대안보다는 현실의 고통 노출을 최고의 작품성에 이어 대중성으로 주입하려는 행태가 K-콘텐츠 브랜드 효과에 영합해 심화했다. 우리 영화는 어쨌든 마니아 콘텐츠가 강력한 폭풍의 씨앗이라는 점을 아직도 간과하고 있다. 어디 그것이 제작진이나 감독의 문제일까. 무르익도록 지켜보지 못하는 수익 비즈니스의 조바심 행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성적은 일방적인 문화 수출 관계가 아니기에 혐한 정서의 발호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명분도 된다. 한한령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중국이 이점을 잘 봐주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25주년이고, 드라마 ‘겨울연가’의 한류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에 수출하는 K-콘텐츠의 양이 수입하는 일본 콘텐츠보다 14배에 이르고 일본 넷플릭스에는 ‘더 글로리’를 포함해 다양한 드라마가 포진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얼마 전 일본 골든디스크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이외에 다양한 K팝이 인기를 끈다. 팬덤은 중장년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 포진하고 있다. 하지만,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언급했듯이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언제나 그렇다. 우리 문화 콘텐츠는 위기의식 속에 대안과 확장성이 있어왔다.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다. 신구 세대의 계승과 변화를 통해서 코로나19 팬데믹의 후유증을 빨리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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