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1973년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 ‘일본 침몰(2006)’에서 대형 지진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데 얼마 전 튀르키예 지진 참사와 양상이 다르다. 지각에서 태평양판과 북미판이 충돌을 일으켜 진도 10의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며, 마침내 일본 열도가 침몰한다. 이는 메걸리스(megalith) 함몰 이론에 따른다. 이는 한쪽 대륙판이 다른 판에 들어갈 때 열과 압력이 가중돼 테두리가 둥근 추 모양으로 뭉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영화에서는 북미판에 들어간 태평양판의 끝에 메걸리스가 형성된다. 이 메걸리스는 일반 지각보다 무겁기에 밑으로 가라앉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지각까지도 끌어당기며 맨틀로 들어갈 수 있다. 영화에서는 ‘일본 열도’를 메걸리스(megalith)가 잡아끌고 들어간다. 이 때문에 일본 침몰 현상이 일어난다. 가상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2007년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도쿄대 등 공동연구팀의 시뮬레이션 증명이 있었다.

이렇게 일본 침몰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은행으로 달려간다. 이른바 뱅크런(Bank-run) 현상이 벌어진다. 갑자기 은행에 달려가는 현상이다. 대량인출사태라고도 한다. 당연히 은행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돈을 찾을 수 없다. 은행은 예금자들의 돈을 쌓아두지 않고 대출을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예금자들이 돈을 찾지 않는다는 전제에 따라 은행을 경영할 뿐이다.

물론 국가에서는 지급 준비금을 일정 정도 보유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최대 7% 정도 수준이다. 그 정도를 넘어서는 뱅크런의 경우 은행은 커버할 수 없고, 파산하게 된다.

202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이아몬드(Diamond), 디빅(Dybvig) 교수는 1983년에 발표한 뱅크런 연구 논문으로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두 연구자는 뱅크런을 통해 정상적인 은행이 파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은행의 역량과 관계없이 사소한 사건이나 루머로 뱅크런을 당해 파산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같이 공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벤 샬롬 버냉키(Ben Shalom Bernanke)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연구도 뱅크런에 관계된다. 그는 1929년 시작된 대공항기에 왜 은행이 줄도산했는지, 분석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29년 이후 대공황에 빠진 상황에서 영국은 당시 고수하던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파운드를 공급해서 경기를 부양하고자 했다. 하지만 미국은 금본위제를 고수하고, 달러를 공급하지 않았다. 달러가 부족했다. 은행은 자신들이 꿔준 돈을 찾으려고 했고 개인과 기업은 인출을 통해 달러를 확보하려 했다. 은행은 달러가 없기에 줄 수가 없었고 은행은 하나둘 도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2008년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자 당시 버냉키 의장은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서 재빨리 달러를 공급하고, 위기를 상대적으로 일찍 극복한다.

다시 일어날 것 같지 않던 뱅크런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36시간 만에 420억 달러(약 55조원)가 인출됐다. 스마트폰 폰뱅킹 앱을 통해서였다. 스마트폰 뱅크런이라는 말이 생겼다. 하루 뒤 최종 파산했다. 40년 된 전미 16위 중형 은행이 사라지는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위기가 매우 과장됐다는 점이다. 미 국채를 매도해 18억 달러를 손해 봤다는 내용을 공시했는데, 자신의 돈이 떼일지 모른다는 예금주들이 스마트폰 앱에 손가락을 쇄도시킨 것이다. 사태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례와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이 같은 어이없고 참담한 결과는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정보 공유가 일어나는 과도한 집중성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자유입출금식 예금으로 받은 돈으로 10년 만기 미국 국채로 구성된 증권을 사뒀기 때문에 발생했다.

당장 돈을 돌려줄 상황이 안되니 국채를 바람에 소문이 좋지 않게 나게 했다. 은행은 고객에게 요구불예금(Demand deposit)을 발행하고, 요구불예금 이자보다 더 높은 이자로 대출한다. 즉 만기가 짧은 예금을 받고 만기가 긴 투자자금을 대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다. 뱅크런은 전염병과 같이 퍼진다.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게 하는 것은 다른 금융기관에 뱅크런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믿음의 유지 방법은 단지 말만이 아니라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며, 해당 은행에 예금한 돈은 보장을 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당신의 돈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이는 단지 뱅크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간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때 버블을 안정시키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고 동의한다면 지금 금리를 올려 긴축을 하는 것이 우리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 믿음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

앞서 영화 ‘일본 침몰’을 언급하면서 뱅크런을 지적했지만, 미래의 뱅크런은 물리적인 공간에서 발생하기보다는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다. 디지털 재난이라고 할 수 있고 특히 그것은 각자 사용하고 있는 손안의 핸드폰이다. 그 핸드폰들이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 모두를 어렵게 할 폰 참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할 수 있다.

우리가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SNS 계정은 공멸을 부를 수 있는 네트워크 지뢰가 될 수 있다. 그냥 네트워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도 붕괴시킨다. 그러한 메커니즘이 누군가, 어떤 세력에게 이용당할 여지를 줄이는 공공적 콜라보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오늘도 사이버 메걸리스(megalith)를 만들지 않도록 정보의 집단 공유 강박 행동을 성찰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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