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선거구 획정위)가 내달 11일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히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미 국회정치개혁특위에 선거구 획정의 기준과 국회의원 정수에 대한 의견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20대 총선 6개월 전인 10월 13일까지는 최종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특히 이번에는 조정해야 할 내용도 많다. 헌재 결정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각 지역의 특성에 맞도록 선거구를 조정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자칫 게리맨드링 같은 괴물도 나올 수 있으니 꼼꼼하게 살펴 볼 일이다.

비용 동결, 정수 확대 방안을 고민해야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기존의 국회의원 지역구 인구 편차 기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선거구 최대와 최소 인구 편차를 현행 3:1에서 2:1로 축소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대체적으로 62곳 정도의 선거구가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대도시 지역은 늘어나는 대신 농촌 지역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구 수를 대폭 늘리고 그만큼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후자의 방식이 그나마 현역 의원들이 수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54석에 불과한 비례대표 정수를 줄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 사회는 이미 복잡한 다원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각 부문의 전문화 속도가 매우 빠르며, 상호 간 이해관계도 강하게 충돌하는 사회이다. 다원적이고 전문적인 사회적 갈등관계를 정치영역으로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여성들의 국회 진출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비례대표를 줄이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비례대표 의석수를 더 늘려야 한다.

그리고 헌재 결정대로 간다면 5곳 안팎의 농촌 지역 군 단위를 하나의 선거구로 묶을 수밖에 없다. 특정 지역의 정서와 전혀 다른 지역과 하나의 선거구를 형성한다면 이는 정치의 통합적 기능, 대표성 기능을 더 위축시킬 뿐이다. 게다가 선거구 획정의 기본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이는 갈수록 소외되고 있는 농촌지역의 정서를 외면하는 꼴이다.

이 문제는 또 어떻게 풀 것인가. 헌재 결정을 바탕으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고 농촌 지역의 소외감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법뿐이다. 물론 여론의 비판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일도 못 하는 국회의원 수를 줄이기는커녕 정수를 늘리는 데 쉽게 동의할 국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나 정서적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합리적 상식과 정치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대신 국회의원들에게 소요되는 총액 보수는 동결시킴으로써 국민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대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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