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유치원 교사가 아이를 유산하고 1주일 휴가 후 출근하자 한 학부모가 “책임감 없이 무턱대고 임신하셨을 때도 화났는데, 수술한다고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우냐”고 화를 내고, 다른 학부모는 “우리 ○○이가 내년에도 선생님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자신의 유산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학부모의 막말에 유치원을 그만둔다는 사연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유치원을 비롯해 학부모 중에 교사를 무시하며 불쾌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교사가 임신은 왜 해서 유산하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도 있을 게 뻔하다.

임신은 개인의 선택이며, 교사의 사생활영역이라 다른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수 없다. 교사의 임신과 출산은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열정과 역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아니다. 자신도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유산한 교사에게 막말할 수 있는 인성을 가진 부모라면 그 밑에서 자랄 아이들이 걱정된다.

유치원 원장이나 교사들은 요즘 진상 학부모가 많아 정말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심지어 아파서 병가를 내면 “교사가 어떻게 아이들을 놔두고 병가를 낼 수 있냐?”고 교감을 찾아와 항의하며 진단서 보여달라는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끼리 놀다 작은 상처라도 나면 교사를 아동 학대 범죄자로 단정하고 바로 경찰에 신고해 CCTV 확인까지 한다. 교사의 잘못이 없고 아이들끼리 우연히 접촉해 생긴 상처라면 사과 한마디 없이 뒤돌아서 나간다니 몰상식에 혀를 내두를 만하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항의성 전화나 민원을 자주 넣는 부모의 아이는 대부분 부모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다른 아이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배려하며 규율을 준수하는 아이들의 부모가 교사를 막 대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아이는 엄마가 유달리 유난 떠는 아이들과 떡잎부터 다르다.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몸에 밴 행동을 한다. 부모가 평소에 타인을 배려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아이가 배운 덕분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는 말처럼 부모의 인성은 아이에게 대물림되니 부모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교권이 바닥인 시대다. 교사가 ‘을 중에 을’이 된 지 오래고 감정노동자로 전락했다. 학교에 민원 넣는 학부모는 양반이고, 학교도 상대하지 않고 교육청에 바로 민원 넣으며 항의하니 교육청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원장, 교장은 학부모 민원이라면 무조건 사과해서 무마하기 바쁘지, 교사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없다.

학부모에 질려 퇴직하는 교사가 증가하고 교육에서 손을 놓는 교사가 많아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아이를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여린 교사들은 상처받아 떠나고, 마음이 독한 교사만 남는다는 우려가 현실이다.

필자 시대의 엄마는 자녀들이 ‘엄마’라는 말 한마디만 듣고도 헌신적인 노력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요즘 아이들이 ‘엄마’라는 말을 듣고 ‘헌신이나 희생’을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집에 5~6명의 아이를 낳고도 모두 잘 키운 예전의 엄마와 비하면 기껏해야 1~2명의 자녀를 키우는 시대다. “아이 키우기 힘들다”며 갑질과 유세가 몸에 밴 엄마들은 개인의 인성 탓이지 육아가 힘든 게 아니다.

교대의 경쟁률이 추락하는 현상도 요즘 엄마들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교대 경쟁률 추락은 교사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학부모가 교사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건 자신의 인격과 위상을 높이고 자신의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길이다.

자신의 아이만 최고로 여기는 부모의 잘못된 이기심은 자신의 아이마저 인성이 나쁜 아이로 자라게 만든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듯 교사가 행복해야 교육이 살아나고 아이들도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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