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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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더 글로리’는 충북 청주에서 벌어졌던 여중생 학교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송혜교는 학교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퇴하면서 가해자에게 “나는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거야”라고 말한 후 20여년간 복수를 준비해 실행에 나서는 내용이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드라마라 공감이 많이 간다.

드라마에는 친구의 팔을 고데기로 지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청주 여중생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한 행동이다. 여중생 폭력 수준이 조직폭력배 못지않다. 드라마 덕분에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늘어가던 시기에, 야구선수 추신수가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후배 야구선수의 재능이 유망하다는 이유로 옹호하는 발언을 해 뭇매를 맞고 있다.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우수한 선수를 어릴 적 한 번의 실수로 WBC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재능이 우수한 가해자는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를 무시하고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아도 괜찮다”는 식의 발언은 납득하기 어렵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가해자를 대변하려면, 피해자가 내 아이여도 쉽게 용서되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가해자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피해자가 존재할 수 있고, 학교폭력이 없었다면 그들 중에 더 유망한 선수가 나올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실력이 뛰어난 가해자 한 명의 미래보다 ‘학교폭력은 절대로 용서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기는 게 더 중요하다.

자기보다 약자를 괴롭히며 쾌감을 느끼는 행동은 사이코패스 같은 범죄다. 피해자들은 자기 영혼이 갈리는 아픔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고문이다. 피해자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도 많다. 학교폭력을 어린 날의 실수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피해자의 아픔의 정도도 가해자가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오죽하면 20여년 복수를 준비하는 드라마가 나오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선 피눈물이 난다’는 말은 진리로 계속 남아야 정의롭다.

국가대표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다. 어떤 과거를 가진 선수가 선발되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학교폭력, 음주운전, 성범죄 등 피해자가 있는 범죄자가 단지 실력이 뛰어나다고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제도는 잘못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범죄자들이 나라 곳곳에서 판을 치니, 야구계마저 학폭 가해자를 국가대표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야구만 잘하면 국가대표가 되는 나라보다, 국가대표가 될 수 없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다.

필자의 어린 시절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인터넷이나 SNS가 발달한 요즘 시대는 가해자들이 그나마 온라인을 통해 단죄받으니 다행이다. 학교 다니며 친구를 괴롭히고, 가혹행위를 한 자들이 연예인, 스포츠선수, 인플루언서 등으로 활동할 생각조차 못 하게 사회가 뭉쳐 용서하지 않아야 학교폭력이 줄어든다. 피해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복수의 칼날을 품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며 승승장구한다면 분명히 잘못된 사회다. 어떤 경우에도 학교폭력에 관대해지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학교폭력이 사라진다.

과거의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온라인을 통한 고발로 가해자들을 단죄하는 방법 외엔 다른 제도가 없는 건 개선해야 할 과제다. 과거사 위원회처럼 학폭 피해자들이 나중에라도 피해를 고발하고 치유나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용서할 만한 보상을 통해 가해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 제도가 생기는 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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