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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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3.02.20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발생한 지진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구조대가 파견됐고, 구조물자를 보내고 있다. 지구촌에 이상 현상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서 이런 피해는 지진진원국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위험에 빠질 수 있어서 항상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자연재해가 아니라도 이미 우리는 지하철공사현장의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세월호 침몰사고, 이태원 참사 등 대형사고를 경험했다.

천재지변은 평소 준비한다고 해도 피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평소 지속적으로 준비하다 보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번 튀르키예의 지진에서 보듯이 강진이 발생하면 내진설계가 된 건물 등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의하면 튀르키예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국가라 건물에 내진설계가 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진에 대비해 국가가 지진세를 시행해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피해가 커진 것은 법규대로 건물에 내진설계가 돼 있었는지, 그리고 지진세를 지진에 대비해 집행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튀르키예 상황을 보면 지진에 대비해 여러 준비를 했음에도 인적·재산적 피해가 컸다. 이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법제를 구축하고 대비한다고 해도 법을 지키지 않거나 정치적 안정이나 평화가 없으면 재난과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튀르키예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국가도 평소 법제를 구축하고 준법의식을 고양하지 않으면 모든 법과 제도는 위급한 순간에 무용지물로 변한다. 우리가 준법 교육을 받고 준법의식을 함양하는 것은 평소의 질서유지뿐만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함이다.

지금 지구촌에는 천재지변만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상황이 점차 악화되고 있어서 사람들의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지난 몇년간 끝을 모르고 상승했던 주택가격이 이제는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국민의 삶에 주름이 가게하고 있다. 소위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발생한 피해는 우리나라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은 계속 금리를 인상하고 있어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우리 경제는 그대로 노출돼 피해를 입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의 이면에는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부동산 문제나 금리 문제 등 경제 문제에 대해 경제논리나 시장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를 적용하게 되면 당장 해결이 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제에 부담을 주어 국민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 이런 현상은 분야별로 다르지 않다. 환경 문제는 과학기술적으로 환경논리로 풀어가야 하는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풀어간다면 당장은 최선의 해결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환경침해로 인해 국민만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법과 제도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갈등이 유발되면, 그때에는 이해를 조정하기 위해 정치력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보면 정치적 해결은커녕 갈등만 증폭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입법부가 헌법의 이념과 정신에 따라 입법 활동을 해야 하는데,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인다면 입법 자체가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부동산 투기의 후유증과 함께 경제 침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점증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툭하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정치권의 대책 없는 태도이다. 국가적으로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몰두하면서 오로지 자기편의 이익만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헌법을 보면 국회의원은 국익우선의 의무가 가장 중요한 의무로 규정돼 있다.

입법부는 행정부와 사법부와 달리 헌법에만 기속된다. 그 이유는 입법부가 법률제정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률은 헌법에 합치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법률은 모든 국민에 적용되는 규범이기 때문에 항상 일반적이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과거에 그렇게 비난을 받았던 행태가 오늘날 국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정치만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가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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