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통일IT포럼 회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 R&D(연구개발) 과제는 산업 현장의 R&D 수요와 괴리가 커 성과가 제대로 창출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GDP 대비 R&D 투자율은 4.15%로 세계 1위 수준이다. 정부의 R&D 투자도 지난 10년간 매년 8.7%씩 증가, 올해 18조 9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개발 생산성은 미국 공공연구소의 1/3 수준에도 못 미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앞선 기술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 관행은 기술혁신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고 정부와 민간, 산·학·연, 25개의 정부출연연구소 간 R&D 영역이 충돌하면서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업무영역의 중복, 협업의 부족 등으로 R&D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시장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나홀로 연구’ 방식도 지적되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R&D 과제의 선정과 평가, 행정부담이 큰 관리체계, R&D 전략 수립, 투자우선순위 결정 등 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의 미흡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부는 ‘전략 없는 R&D 투자 확대’가 현장에서 R&D 혁신의 위기를 초래하는 최대 문제점으로 보고 지난 5월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 R&D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정부 R&D 지원체계를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개편하고 ‘(가칭) 과학기술전략본부’를 신설해서 정부 R&D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기로 하는 등 대수술에 나섰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분담해서 정부는 민간이 하기 어려운 장기·기초 연구와 중소기업지원에 집중할 예정이다. 산·학·연의 역할을 차별화하고 사업공고에서부터 기초·원천·상용화 연구로 구분해서 지원대상을 명확히 설정하며 특히 상용화 연구과제의 수행기관을 점차 중소·중견기업으로 제한할 계획이다.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위해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 재편을 추진하며 사무국 역할을 하는 ‘(가칭) 과학기술전략본부’를 미래부안에 독립기구로 설치해서 R&D 계획, 예산분배 및 조정 기능을 강화할 예정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등 과학기술 분야의 3개 연구기관을 통합해 과학정책의 ‘싱크탱크’인 (가칭)과학기술정책원을 설립하고 부처별로 분산된 18개 R&D 전문 관리기관을 통합, 개편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그동안 정부 R&D의 병폐로 지적됐던 R&D 과제를 연구기간들이 경쟁해서 수주하는 ‘정부 R&D 과제 수주방식(PBS)’과 ‘나홀로 연구’ 관행도 쇄신한다. 출연연구소는 미래를 선도할 기초·원천 기술개발을 하되 중소·중견기업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출연연의 ‘연구 미션’을 명확히 하고 출연연이 보유한 기술과 인력, 노하우를 중소·중견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중소·중견기업의 연구소 역할을 수행토록 할 예정이다. 정부재정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산업기술 중심의 전자통신연구원, 화학연구원, 기계연구원 등 6개 출연연은 민간과제 수탁 실적과 정부출연금 지원 규모를 연계하는 한국형 ‘프라운호프’ 연구소로 개편할 계획이다. 아울러 내년 R&D 국가예산은 R&D 혁신과 재정개혁과 맞물리면서 산업기술 예산을 금년보다 약 5% 감액할 방침으로 2016년 예산지침에 반영해 각 부처에 통보했다. 종료된 사업은 연장하지 않고 신규 사업도 증액은 최소화하기로 해 ICT를 바탕으로 ‘제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제조업3.0프로젝트’도 축소가 불가피하다.

‘정부 R&D 혁신방안’은 원론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R&D 혁신 작업으로 진통과 혼란을 겪은 과거 사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 R&D를 총괄하는 과학기술본부를 신설했으나 이명박 정부 때 지식경제부를 신설, 이관했고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연구기관 재편과 연구기관 간 영역 명확화와 민간과 역할분담도 추진했으나 과연 성공했는지 의심스럽다. R&D 혁신을 위해서는 법령 제·개정, 조직 신설과 통폐합 등 해야 할 작업이 태산인데 현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시기적으로도 늦은 감이 있다. R&D 혁신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예산 감액도 취지는 이해하나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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