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통일IT포럼 회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을 놓고 민간인 사찰 의혹 여부가 정치권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야당은 국정원이 무차별적인 민간인 사찰을 진행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정원에서는 “구입한 프로그램 20개 가운데 18개는 해외, 2개는 연구용으로 국내에서 사용했다. 해외도 대공용의점이 있는 해외 인물에게만 사용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제 이를 이용해서 실제로 국내에서 불법으로 도청 또는 감청을 했는지 여부가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도청과 감청을 혼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청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불법적(不法的)으로 대화나 유선전화·휴대폰·컴퓨터 등의 통신 내용을 엿듣는 것을 말한다. 도청은 사생활 침해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악용할 소지가 있어 대부분 국가에서 법률로 금지하고 있다. 1972년 미국의 닉슨 정부시절 야당의 선거사무소 전화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다가 발각되어 이것이 정치 문제화 되었고 결국 1974년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것이 유명한 사례이다. 반면 감청은 법률, 우리나라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에 근거하여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전자장치, 기계장치 등의 감청설비를 사용해 통신의 음향·문자·부호·영상을 청취하고 그 내용을 지득·채록하거나 통신의 송·수신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국정원이 정치적 목적은 물론 여하한 명목으로도 불법적인 도청을 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원죄 때문에 정보기관의 손발을 묶어버려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국가의 정보 역량을 노출하거나 훼손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도·감청은 전 세계 수사·첩보기관이 예외 없이 하는 일이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도 1990년대 중반부터 통신사업자에게 감청설비 구축을 의무화했으며 프랑스는 법원의 사전 허가 없이도 테러예방 및 산업보호 목적으로 휴대전화, 이메일 감청뿐만 아니라 해킹까지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군사적으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들 국가보다 훨씬 더 안보역량 강화가 불가피하다. 북한의 사이버 테러 위협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은 수시로 ‘악성 코드’를 퍼뜨리고 우리나라 원전 시스템을 해킹 한 후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고 한 배후로도 의심받고 있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비하려면 감청설비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데 정치논쟁으로 불가능하다. 현행법은 합법적인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고 있지만, 감청설비가 없는 탓에 살인, 마약 등의 강력범죄나 테러, 간첩활동 등이 발생해도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하다. 국가 안전 보장과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 보호를 위해 통신사업자에게 휴대폰, 포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감청이 가능한 장비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통신비밀보호법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으나 불법사찰에 악용할 여지가 있다는 논란 때문에 심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또한 최근 이병호 국정원장은 “급증하는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고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해킹 프로그램을 미국 국방부와 FBI 등 35개국 정보수사기관 97곳에서 구입했다”고 했다. 정보통신 강국의 대한민국이 해킹 프로그램조차 자체 개발하지 못하고 수입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한 현행법의 허점을 보완하고 암암리에 최고급 해킹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해외까지 팔고 있는 북한·중국에 대응해 국익과 국가안보를 위해서 기술개발 역량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공공의 안전을 명분으로 국민의 사생활 및 인권 보호를 경시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행위는 막아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개정안에는 수사기관에 대한 엄격한 감청 허용범위, 수사기관을 제외한 모든 주체의 감청금지 및 위반 시 처벌 강화, 오남용 방지를 위한 ‘감사위원회’ 설치 등을 담고 있는데 미흡하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이를 보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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