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지연 기자] 1994년 조계종 사태 당시 멸빈 징계를 받았던 전 총무원장 의현스님이 승적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조계종 재심호계원은 1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제96차 심판부를 열고 의현스님에 대한 징계를 공권정지 3년으로 경감했다. 초심호계원 심판에서 멸빈 징계를 받은 지 21년만이다.

1994년 조계종 사태는 두 차례 총무원장을 지낸 의현스님이 3선 연임을 시도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극심한 폭력 사태가 벌어졌고 결국 의현스님이 사퇴했다. 초심호계위원회는 1994년 6월 해종행위 등의 혐의로 의현스님에 대한 체탈도첩(멸빈)을 결정했다.

지난달 21일 의현스님은 호계원에 재심청구를 했다. 그리고 재심호계원은 의현스님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호계원이 재심 개시를 결정한 이유는 ‘초심 의결을 통지 받지 못했다’는 스님의 주장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호계원 규정상 초심위원회의 의결을 통지받은 지 7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하지 않거나 재심에서 징계의 의결이 있을 때는 징계가 확정된다.

그러나 의현스님은 당시 징계결정을 통보 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자신이 재심을 청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의현스님이 거주하던 대구 정법사도 이와 관련한 사실 확인서를 제출했다.

호계원은 이 건을 외부 로펌 등에 의뢰해 ‘징계결의서가 송달되지 않았다면 초심 결정이 확정될 수 없고, 재심을 다룰 수 있다’는 의견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호계원법 17조가 규정한 송달 의무를 위반한 만큼, 재심 개시는 가능하다는 판단에 근거해 18일 심리를 개시했다. 의현스님은 이날 심판부에 출석해 지난 21년의 소회를 담아 참회문을 낭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심호계원은 “당시 의현스님이 종단을 혼란케 한 죄상은 작지 않으나 종도들에게 진심으로 참회하고 승려로서의 위의를 유지한 점, 세납이 산수(80세)인 점 등을 감안해 공권정지 3년을 판결한다”고 밝혔다. 

종단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1994년 멸빈자 사면의 물꼬 트기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1994년 종단개혁 당시 논란의 중심이었던 전 총무원장 의현스님이 사실상 사면복권의 절차를 밟게 됐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의 사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94개혁불사 20주년 기념법회서 밀운스님은 멸빈·제적한 8명을 전원 사면·복권해 달라는 내용의 호소를 발표한 바 있다. 스님은 “불교는 자비문중이며 대화합의 교단”이라면서 “10.27법난으로 멸빈 제적된 15명 전원을 성철스님의 재가로 사면복권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1994년 당시 멸빈 징계가 내려진 데 대해서 정당성에 의문을 가지는 시각들도 있다. 멸빈자 당사자 중에도 ‘정치적 보복이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조계종 일부와 불교시민단체는 이번 호계원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참여불교재가연대(상임대표 허태곤)는 19일 입장문을 내고 “의현스님은 1994년 당시 깡패를 동원해서 젊은 학승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반불교, 해종행위자”라며 “재심 결정은 자승 총무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취지와 의미가 쇠퇴돼 왔던 94년 종단개혁이 역사를 거슬러 완전히 원점으로 돌아갔음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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