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독교 정서, 미국을 흔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오만한 기독교에 반기 든 사람들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창조론’을 가르치느냐 ‘진화론’을 가르치느냐는 문제는 미국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 불리는 미국 남동부와 중남부 지역은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이며 기독교 근본주의의 성향이 강한 곳이다. 근본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던 테네시 주의회는 1925년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일명 ‘원숭이 재판’으로 불린 세기의 재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1987년 미국 대법원이 “학교 교과과정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는 건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결한 후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으니 ‘지적설계론’ 등 여러 이론을 보여주며 학생들이 토론을 벌이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지적설계론은 어떤 지적인 존재가 세상을 설계했다는 것으로 신(神)이 ‘지적인 존재’로 바뀐 것과 같다.

2005년 캔자스 교육위원회는 공립학교에서 생물학적 진화론을 가르치려면 그에 대한 대안으로 지적설계론도 같이 가르쳐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에 무신론자이자 오리건주립대학 물리학 석사인 바비 헨더슨은 공개적인 서한을 보내 “지적설계론을 가르치려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Flying Spaghetti Monster; FSM)’ 역시 동등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는 캔자스 교육위원회의 결의에 항의하고자 기독교를 패러디한 것이다.

하지만 FSM은 인터넷 잡지와 언론에 소개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신자를 자처하며 하나의 신흥종교로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 한국교회 공식 웹사이트’에는 “천지의 창조주이자 만물의 주관자이신 분, 권세의 상징 미트볼과 자연의 풍부함 그 자체인 소스 그리고 전 우주의 에너지와 역동을 관장하는 힘찬 국수가락의 삼위일체! 모든 창조물에 사랑의 계명을 전파하시는 FSM님이시여! 경배받으소서! RAmen!”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소개글이 올라와 있다.

FSM의 교리를 살펴보면 기독교를 패러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은 2개의 미트볼을 감싼 스파게티 면발 뭉치와 위로 촉수처럼 나온 2개의 눈으로 이루어진 모양이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술에 취해 술김에 4일간 천지를 창조하고 나머지 3일은 숙취에 쓰러져 잤다거나, 면 가락이 세상과 인류를 구하고 인도한다고 주장하며 국수를 건져 물을 털어낼 때 쓰는 채 등 주방기구를 신성시하고, 기도를 마칠 때마다 ‘라멘(RAmen)’으로 끝내는 등 기독교를 조롱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또 이슬람교 신자가 베일을 머리에 쓰듯 국수채 등을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하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에 스파게티 괴물을 합성하거나 성당 모자이크 벽화를 패러디한 그림을 만들기도 한다.

FSM이 말하는 8가지 ‘웬만하면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은 이들이 종교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드러난다. ‘웬만하면 나를 믿는다고 남들보다 성스러운 척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웬만하면 내 존재를 남들을 괴롭히는 핑계로 사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웬만하면 내 신전을 짓는 데 수억금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등 그들이 종교와 종교인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과 부당함 등이 표현되고 있다.

반(反)종교단체냐는 질문에는 “분명하게 말해서 우리의 정체성은 ‘종교에 반대하는 단체’가 아니라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엽기적이고 불합리하고 개념 없는 것들에 대해 경계하는 단체’를 지향한다”고 답한다. 또 “알려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흥종교라 당하는 설움이 크지만, 적어도 신자들에게 헌금으로써 믿음을 증명하라고 하거나 무지막지한 숫자의 교인들을 거느리며 규모와 물량으로써 주류(主流, mainstream)의 자리에 오르고 싶진 않다. 주류(酒類, alcoholic beverages)라면 모를까”라는 말로 금권주의·물량주의로 치닫는 종교계를 비판하기도 한다.

▲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Flying Spaghetti Monster; FSM)’의 스파게티 괴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에 스파게티 괴물을 합성한 모습.

기독교 강요에 대한 반발
창조론-진화론 교육으로 대립
대법원 “정교분리 원칙 지켜야”
지적설계론 놓고 갈등 커져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
기독교인 조롱하는 패러디물
종교인에 대한 불편감 등 표현
종교인의 자세·태도 돌아봐야

FSM은 올해 1월 ‘사탄교회(The Church of Satan)’가 오클라호마 의사당에 사탄 동상 설치를 요구하며 논쟁이 벌어지자 자신들의 상징물도 의회에 세우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바이블 벨트의 한 축인 오클라호마의 주의회 의사당에는 2012년 일부 공화당 국회의원과 기독교 단체들이 강행 설치한 ‘십계명 비’가 있다. 이를 두고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은 수정헌법 1조에 명시돼 있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기념비 철거를 주장하며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혼란을 틈타 사탄을 모시는 종교인 사탄교회는 의사당 내 설치를 요구하는 사탄 동상의 디자인을 공개했다.

공개된 이미지를 보면 펜타그램(Pentagram, 오각형 별 모양의 상징물로 본래 성스러움을 상징하나 뒤집을 경우 사탄을 의미)과 함께 흔히 성경 속 악마를 묘사할 때 등장하는 날개와 뿔이 달린 염소가 의자에 앉아 있고, 양 옆에 미소를 지으며 남녀 아이들이 서 있다. 해당 단체의 대변인 루시안 그리브즈(Lucien Greaves)는 “이 조각상은 사타니즘을 대표하는 동시에 의사당을 찾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사탄의 무릎에 앉아 영감을 얻고 묵상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동상의 크기를 약 2미터 정도로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이 일로 기독교 단체의 반발은 물론이고 타 종교와 시민단체까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각종 요구를 쏟아냈다. 힌두교 등 다른 종교들도 자신들의 상징물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자 FSM도 청원 행렬에 동참했다.

ACLU는 “사탄 기념물도 십계명처럼 종교 상징물의 관점에서 설치한다는 것인데 문제없다”며 “사탄 기념물이 문제가 된다면 십계명도 똑같이 문제”라고 반박했다.

지난 2010년 방한한 댄 킴볼(dan kimball) 목사는 미국의 청년들 사이에서 반기독교정서가 팽배하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 예로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거나 “기독교인들은 판단적이고, 우리는 맞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오만하고 거만한 사람들”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FSM 등은 종교 특히 미국의 주류를 차지하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조롱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지 않거나 배타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에서 종교인으로서의 태도와 비종교인·타종교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봄 직하다.  

▲ ‘사탄교회(The Church of Satan)’가 오클라호마 의사당에 설치를 요구한 사탄 동상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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