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세상의 종은 크게 동양종과 서양종으로 나눈다. 동양과 서양의 사상이나 철학이 확연히 다르듯이 동양종과 서양종은 사뭇 다르다. 그래서 동양종과 서양종으로 분류한다. 우선 다른 면을 찾아보자.

동양종은 밖에서 치고, 서양종은 안에서 친다. 동양종은 낮은 곳에 걸어놓고 서양종은 종루라는 높은 곳에 걸어둔다. 동양종은 웅장하고 울림이 크고 서양종은 소리가 맑다. 많이 다르다. 하지만 세상의 종을 한국종과 한국종이 아닌 종으로 분류한 사람이 있다. 왜 그랬을까. 한국종의 특별한 어느 정도이기에 한국종의 위상을 이렇게 올려놓았을까 싶다.

한국종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성덕대왕 신종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보자.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을 발간하면서 적었던 글의 일부를 다시 적는다.

장중하면 맑기 어렵고, 맑으면 장중하기 힘든 법이건만 에밀레종은 그 모두를 갖추었다. 엄청나게 큰 소리이면서 이슬처럼 영롱하고 맑다. 소리 속에 든 신화가 사람의 애간장을 끊어놓을 듯,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다시 끊어질 듯한 맥놀이가 사람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던 길을 멈출 수밖에 없다.

한국의 소리, 동양의 소리, 하늘과 땅을 울리는 소리, 지상에 사는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소리는 넓고 깊게 퍼져간다. 산과 산을 넘어 하늘 위를 날고 강과 강 건너 마을마다 소리를 내려놓고 떠나간다. 소리는 아름다운 파편이 돼 분화되면서 산은 더욱 깊게 물은 더욱 낮게 사람은 더욱 따뜻하라고 타이르며 퍼져갔다.

한국종은 동양종에 속하지만 동양의 종 가운데에서도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종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중국종이나 일본종의 경우 전체적인 문양이 단순한 선으로 구성돼 있는데 반해 한국종은 비천상과 상․하대 문양, 유곽 등에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켜 놓았는데 구름 속에서 날아가는 선녀를 살아 움직이는 듯하게 그려 놓았다.

종은 원래 소리를 위해서 존재한다. 한국종만이 가진 음관이 있다. 전설의 피리인 만파식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음관은 한국종만의 특징이다. 그리고 가장 이색적인 특색은 소리다. 종소리가 어느 나라의 종소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맥놀이라는 소리를 가지고 있어 신비롭고 외경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낸 위대한 종이 한국종이다. 그리고 종루에 설치되는 명동(鳴洞)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종 밑 부분에 항아리를 묻거나 반달모양의 홈을 파주는 것으로 타종 시 종소리의 공명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종 자체만의 소리가 아니라 주변과 조화에도 신경을 쓴다. 어우러져 나는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가 종 밑에 항아리를 묻어 공명을 유도하고, 둥근 홈을 파 소리를 부드럽게 한다. 한국종을 만든 장인의 작품이다. 그리고 한국종만이 가진 특징들이다.

한국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맥놀이에 대해 알아본다. 맥놀이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다름에서 온다. 이질적인 것이 만나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칭과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반적인 과학 원리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소리다. 다른 것이 만나서 서로 밀어내고 당기면서 다른 소리가 화합하고 밀고 당기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적인 다른 것을 받아들이면서 개별적인 독립성을 보존하는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소리가 맥놀이다. 맥놀이는 가장 적은 에너지로 소리를 가장 멀리 가게 하는 효과를 말한다. 이러한 맥놀이는 종이 좌우비대칭일 때 발생한다.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호기심이 없으면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소리다.

에밀레종의 비대칭 구조가 맥놀이 현상을 일으킨다. 한국적인 미학은 부분의 파괴를 통해 전체를 재조합해내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좌우 대칭을 이루지 않게 만들면서 전체적으로는 큰 통합을 만들어내는 원리다. 좌우의 다시 말하면 앞과 뒤의 그림이나 조각품을 다르게 만들어 서로 대칭을 의도적으로 깨면 비대칭이 된다. 이 다름을 하나의 종에 배치함으로 써 맥놀이가 발생한다. 한국종은 맥놀이가 나지 않으면 안에 별도의 쇠를 녹여 붙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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