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주건(朱建)
평원군 주건은 이론이 정연한 고집쟁이였다. 한(漢)나라에 살고 있었는데 옳지 않은 일에 영합하지 않고 청빈을 달게 여겼다. 그 당시에는 여태후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던 벽양후 심이기가 사귀기를 희망했을 때도 그는 상대하지 않았다. 벽양후가 여태후와 나쁜 짓을 일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건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다. 평소 친했던 육가가 문상을 왔지만 그는 가난했기 때문에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상복마저도 남에게서 빌려야 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육가는 돈을 내어 장례를 치르게 하는 한편 벽양후에게 찾아가서 말했다.

“기뻐하십시오. 주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건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내가 왜 기뻐해야 하는가?”

“전에 그대는 주건에게 교제를 청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에 성의를 보이면 주건은 반드시 그대를 위해 몸을 바칠 것입니다.”
벽양후는 즉시 주건을 찾아 문상하고 부의금으로 백금을 내놓았다. 그 말이 전해지자 제후, 귀인들이 너도나도 찾아가서 내놓은 부의금이 5백금이나 되었다.
그 얼마 뒤 여태후와의 추문을 이용해서 벽양후를 헐뜯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으로 이 추문을 들은 혜제는 분노로 몸을 떨며 형리에게 벽양후를 체포하여 죽이려고 했다. 기세당당한 여태후지만 이번만은 부끄러움을 느껴 벽양후를 감쌀 수가 없었다.

한편 중신들은 모두가 벽양후를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히 죽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었다. 궁지에 몰린 벽양후는 주건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주건은, “일이 이미 사직 당국에 넘어 간 이상 공연히 그대를 만날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해 버렸다.

그 뒤 바로 주건은 해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굉적을 찾아갔다.

“폐하와 그대와의 사이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여태후의 총애를 받고 있는 벽양후가 체포된 일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세상에서는 그대가 벽양후를 함정에 몰아넣은 것이 틀림없다고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그대로 방관하고 계실 수는 없는 일 같습니다. 만일 벽양후가 죽게 되는 날에는 여태후도 잠자코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보복으로 반드시 그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지금은 망설이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벽양후를 구해야 합니다. 폐하가 그대의 청을 받아들여 벽양후를 풀어 준다면 여태후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폐하와 여태후에게서 총애를 받게 되어 점점 더 영달을 누리게 될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은 굉적은 급히 혜제에게 달려가서 벽양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렇게 해서 이 사건은 주건의 생각대로 해결이 되었다.

벽양후는 처음에 주건에게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해서 화를 내었다. 그러나 그 뒤 주건의 주선으로 자신이 석방됐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뒤 몇 년이 지나고 여태후가 죽자 중신들은 여씨 일족을 섬멸했다. 이때 벽양후는 여씨 일족과의 관계가 깊었는데도 그 화를 면했다. 그것은 오로지 육가와 주건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 벽양후도 문제 때 회남의 여왕 손에 죽었다. 옛날 여씨 일족과의 친근 관계가 화근이 된 것이었다.

그 때 문제는 주건이 그 전에 벽양후 구명에 역할을 했다는 것을 중시하고 그를 체포하여 그동안의 사정을 밝히기 위해 포졸들을 보냈다. 주건은 궁궐에서 포졸들이 왔다는 것을 알고는 자살하려 했다. 그것을 보고 가족들은 물론 포졸들까지 만류했다.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어떤 판결이 내려질 것인가는 아직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아니다. 내가 죽는다면 너희들은 휩싸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건은 그렇게 말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하고 문제는 주건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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