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곽해의 영향력은 그 영역이 차츰 넓고 높아져 갔으며 관가에서도 그의 중재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따르는 젊은이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었다. 밤이면 가까운 마을이나 이웃 고장에서까지 유력자들이 그의 집으로 찾아들었다. 그들은 곽해가 숨겨 두고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서로 자기 집에서 돌보겠다고 청하는 자들이었다.

한(漢) 무제가 지방의 호족을 무릉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시행할 때의 일이다.

곽해에게는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3백만 전 이상의 재산가라는 규정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러나 관리로서는 곽해가 귀찮은 존재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그를 이주시키려고 계략을 짰다.

대장군 위청이 곽해의 편을 들어 무제에게 건의했다. “폐하 곽해는 가난해서 이주 규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러자 무제가 말했다. “서민인 주제에 대장군을 시켜 변명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그는 결코 가난할 리가 없다.”

그렇게 해서 곽해는 옮겨 가게 되었다. 그 때 전송 나온 사람들이 낸 전별금이 천여만 전이나 되었다. 곽해의 이주를 꾸민 것은 같은 고향 사람인 양계주의 아들로서 그때 그는 현의 관리로 있었다.

화가 난 곽해 형의 아들이 양계주 아들을 죽였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곽해의 집안과 양계주의 집안은 서로 원수가 되었다.

곽해가 함곡관으로 지나가자 그 소식을 들은 관중의 유력자들이 앞을 다투어 곽해와 사귀기를 요청해왔다.
그러는 동안에 고향에서는 양계주까지 살해됐다. 양계주의 가족은 천자에게 상소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다. 그러나 사자가 궁궐 문까지 왔을 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무제의 귀에 들어가자 곽해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곽해는 가족을 하양에 숨긴 다음 자신은 임진으로 도망쳤다. 임진의 적소공은 곽해와 만난 적은 없었지만 가명을 써서 빠져나가려는 곽해를 못 본 척 내버려 두었다. 곽해는 그곳에서 태원으로 향했다.

한편 곽해를 쫓던 포졸들은 소문을 통해 겨우 적소공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러나 적소공은 자살하면서까지 입을 열지 않자 여기서 수사의 실마리는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곽해가 체포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었다. 관리는 그의 범죄를 추궁했으나 살인 사건은 대사령이 내려지기 이전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유죄로 할 수가 없었다.

지 땅의 출신인 유가의 한 학자가 심문관과 같이 앉아 있었다. 곽해를 존경하는 어느 사람이 곽해를 옹호하자 그 학자가 말했다. “곽해는 천하의 법을 어긴 죄인이다. 그가 무엇이 훌륭하냐?”

그 말을 들은 곽해를 존경하는 사람은 그 학자를 죽이고 혀를 뽑아 버렸다. 관리는 곽해가 시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추궁했다. 그러나 곽해는 전혀 몰랐고 또 그의 행방도 알 수 없어 이 사건도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관리는 곽해가 무죄라고 조정에 올렸다.

그때 어사대부 공손홍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곽해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권력을 휘두르고 사소한 원한으로 사람을 죽이도록 부하에게 시켰다. 본인은 전혀 모른다고 하나 이런 행위는 직접 손을 써서 살인한 것 이상으로 죄가 무겁다. 대역무도의 죄에 해당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곽해의 일족은 모두 처형됐다.

곽해가 죽은 뒤 협객이 되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 제멋대로 날뛰는 무리일 뿐 이렇다 할 인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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