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주역 건괘 문언전에서 학문(學問)의 방법론을 ‘학이취지(學以聚之), 문이변지(問以辨之), 관이거지(寬以居之), 인이행지(仁以行之)’라는 4단계로 설명했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우선 배워서 견문을 넓히고, 이렇게 얻은 식견의 타당성을 분별하기 위해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질문해야 한다. 그 다음 나와 다른 견해를 널리 포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배우고 물어서 얻은 지식을 연구하여 자기화하고, 깊은 사고로 얻은 통찰을 객관화하는 것은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공자가 중요시한 것은 무엇보다 배운 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그는 ‘군자는 말은 어눌하지만 행동에 옮길 때는 재빠르다’라고 하여 말보다 솔선수범을 중시했다.

남의 잘못을 본 인자는 어떻게 할까? 공자는 잘못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인자라면 자기반성의 기준으로 삼을 뿐 그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어떤 일을 할 때 군자는 그 일의 도리를 생각하지만, 소인은 혜택이나 이익을 생각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노자도 공을 세워 이름이 나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라고 했다. 중국의 역사에서 세상이 어지러울 때 도가의 인물이 나타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천하가 안정되면 다시 유가의 인물이 나타나 ‘치국평천하’의 도리를 펼친다. 지금 우리는 능력과 자질도 없으면서 줄이나 잘 선 공을 바탕으로 ‘치국’의 자리를 탐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을 무수히 본다. 예의와 겸양의 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인의 핵심은 역시 ‘충(忠)’과 ‘서(恕)’이다. 충은 아랫사람이 일방적으로 윗사람에게 봉사한다는 뜻이 아니다. 공자가 말한 충은 성실이라는 의미이다. 서는 남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말한다. 석가모니(釋迦牟尼)는 브라만어를 중국어로 음역한 것이다. 석가는 ‘능인(能仁)’이라는 뜻이고 모니는 ‘적묵(寂黙)’이라는 뜻이므로 ‘묵묵히 인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인들의 생각은 모두 같다. 공자의 제자들은 대부분 젊었지만,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대부분 스승보다 나이가 많았다. 두 성인이 가르치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공자는 현실의 도리를 알아듣기 쉽게 가르쳤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에는 시공을 넘는 난해함이 대부분이다.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모두 상당한 지적 수준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공자는 수다쟁이를 아주 싫어했다.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행동으로 뒷받침하지 못할까 두렵고, 자기가 한 말을 지키려고 지나친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헌(袁憲)은 평생 공자의 총무부장 노릇을 했으므로, 어떤 허드렛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성실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공자가 죽은 후 원헌은 은퇴하여 농사를 짓고 살면서 반쯤은 유협과 같은 생활을 했다. 사마천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원헌과 계차(季次)를 사기의 유협열전에 넣어 그들의 고결한 모습을 칭찬했다. 사마천은 자기가 한 말을 천금과 같이 여기고, 벗과의 의리를 중시하면서 약자를 도운 유협이 도덕, 정치, 법률로 해결하지 못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주먹’을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은퇴한 원헌이 그리웠던 자공(子貢)이 멋들어진 차림으로 그를 찾아갔다. 너덜거리는 옷을 입고 세수도 하지 않은 친구를 본 자공이 이렇게 말했다.

“너 어디 아프냐? 살기는 힘들지 않니? 내가 좀 살만하니 도와주랴?”

“음~ 재산이 없는 놈은 가난한 놈이고, 도를 배우고도 실천을 하지 않는 놈은 병든 놈이지. 난 가난한 놈이지만 병든 놈은 아니야!”

자공은 몹시 부끄러웠다. 살아있는 것이 부끄러운 세월호 참사를 보며 새삼 아는 것보다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한 산 자들의 탓으로 횡액을 당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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