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거록성으로 조나라 헐과 함께 들어간 장이는 진나라 장군 장한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거록성으로 들어갈 때 진여는 북쪽의 상산으로 물러가 그곳에서 수만 명의 병사를 모아 군대를 재편성한 뒤 남쪽으로 내려가 거록의 북쪽에 포진을 했다.

진나라 장한은 식량 보급로를 확보한 채 유리한 조건에서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위기에 처한 장이는 사자를 진여에게 보내 구원군을 보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을 했다. 그러나 진여의 생각은 달랐다. 군사를 나누어 줘봐야 자멸할 것이 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이에게서 사자로 온 장염과 진택이 뒷일을 생각하지 말고 친구로서 신의를 지키라고 하자 진여가 병사 5천 명을 나누어 주었으나 그들은 진나라군에게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다행히 항우가 전군을 거느리고 황하를 공격하여 진나라를 무찔렀다. 제후들도 합세하였다. 항우는 장한을 잡아 개선했다. 장이는 각 제후들에게 깊이 사의를 표하고 나서 진여에게 그간의 잘못을 지적하여 엄하게 추궁을 했다. 진여가 화를 벌컥 화를 내었다.

“장염과 진택은 나에게 전사하라고 협박했다. 그래서 할 수 없어 병사 오천을 주고 시험 삼아 진나라 군사와 대전하게 했지만 전멸한 것이다.”

장이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진여가 두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한 장이는 끝까지 진여를 추궁하려고 하였다. 마침내 진여의 화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처럼 내가 미운가? 그렇다면 장군의 지위 같은 것도 싫다. 돌려주겠다.”

그렇게 말하고 진여는 장군의 인수를 장이에게 내밀었다. 그때서야 장이도 놀라 인수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마침 진여가 화장실에 간 사이 식객 중의 한 사람이 장이에게 말했다.

“진 장군은 인수를 양보하려고 합니다. 받지 않으면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양하지 말고 어서 빨리 받으십시오.”

그렇게 해서 장이는 마음을 고쳐먹고 진여의 군사를 빼앗기로 하고 인수를 몸에 찼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진여는 장이가 인수를 찬 것을 보고 바로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장이는 진여의 군사를 손에 넣었다. 진여는 바로 측근 군사 몇 백 명을 거느리고 황하 근처로 옮겨 가서 고기를 잡으면서 지냈다.

그 일로 장이와 진여의 사이는 급격하게 나빠진 것이었다.

조왕 헐은 다시 신도에 도읍을 정했다.

장이는 그 뒤 항우를 따라 관중으로 들어갔다. 한(漢)나라 원년(기원전 206년) 2월에 항우는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제후 및 왕으로 임명했다. 장이는 여러 곳을 돌아다닌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를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항우도 전부터 장이의 명성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조나라 땅을 분할하여 장이를 상산왕에 임명하고 신도를 가지게 했다. 그때 신도는 양국이라 고쳐 불렀다.

그런 인사를 보고 진여의 식객들이 항우에게 말했다.

“진여와 장이는 함께 조나라를 받든 사람들입니다. 진여에 대해서도 배려해 주십시오.”

항우는 진여가 관중으로 오지 않고 남피에 있다는 것을 듣고 남피 부근의 3현을 봉읍으로 주었다. 또 조나라 왕 헐을 대로 옮겨 왕으로 삼았다. 장이가 자기의 영지로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진여는 한층 더 화가 나서 말했다.

“장이와 나는 공로가 같다. 그런데 장이는 한 나라의 왕에 임명되고 나는 불과 몇 개 현의 영주에 지나지 않는다. 항우의 처사는 매우 불공평하다”

그 뒤 제왕 전영이 항우의 초나라에 갔을 때 진여는 곧 하열을 사자로 보내 이렇게 말하게 했다.

“천하를 다스리면서도 항우의 처사는 불공평합니다. 좋은 영지는 모두 가까운 부하 장군들에게 주고 본래의 왕들은 벽촌의 땅으로 쫓아 내었습니다. 조나라 왕 또한 변방인 대로 쫓아냈습니다. 저에게 군사를 빌려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남피를 귀국의 울타리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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