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알

이재무(1958~)

 갓 지었을 적엔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으니
서로 흩어져서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 구나

[시평]
‘처음처럼’은 어느 소주의 상표이지만, 실은 어는 종단엔가 사회단체에서 내놓은 캠페인의 제목이었다. 모든 일을 행할 때는 그 일을 처음 할 그 때처럼, 그 마음과 정성으로 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이에는 담겨져 있다.
처음 만나 잘 나갈 때는 서로 의기가 투합이 되어 없어서는 못살 것 같이 하다가, 힘 떨어지고 별 볼 일 없게 되면, 그만 찬밥 신세로 밀려나거나 밀어내는 것이 인생살이, 인간사이기도 하다. 찬밥 신세가 된 사람이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또 귀찮아하면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몰두를 하는 것이, 일상적 사람들의 서글픈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함이 비단 사람뿐이 아니라, 밥이라는 놈도 그렇다는 것을, 어찌 알았으리요. 갓 지었을 때는 서로 끈끈하게 들러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사랑한다느니, 우리는 서로 같은 처리라는 등, 사랑과 평등을 외치더니만, 찬밥 신세가 되어 물이라도 말게 되면. 자신의 이익 따라 뿔뿔이 흩어지는 인생사, 세상만사 모두, 모두 같고 같은 것이로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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