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의사로부터 자녀가 장애 또는 난치 질환을 갖고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면, 대부분의 부모는 절망감과 불안, 그리고 부인(denial)의 반응을 보인다. “정말 그 병이 맞습니까? 별 것 아니기를 기대했는데요. 그러면 우리 아이 이제부터 어떻게 해요? 큰일 났네요.” 절망과 좌절의 반응이다. 불안 성향이 높은 엄마는 두려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 병이 평생 가나요? 고칠 수는 있나요? 만일 낫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요? 정말 걱정이 되네요.”

현실적 상황을 부인하는 반응은 사실 불행한 사건을 경험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다른 문제 때문에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것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우리 양쪽 집안에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제가 잘못 키우지도 않았는데 그 병이 생길 리 없잖아요?” 이것은 마치 암 진단을 선고 받은 환자가 자신의 병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반응이다.

사실 여러 가지 장애나 난치 질환이라고 할지라도 당장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중증 암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성질과 강도가 다른데도 말이다. 이유는 ‘자식(子息)’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내 자식이 힘든 병에 걸렸다니 속상하다. 자식이 감기나 장염만 걸려도 속이 상한 부모들의 입장이 이해된다.

장애 아동을 키울 때 부모는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좋다. 첫째, 부모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장애 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는 우선 자신들의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늘 평온함과 평정을 잃지 말고, 자녀의 제반 증상들에 대해서 짜증과 답답함이 아닌 안타까움과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자.

자녀의 문제 행동들에 대해서 비난을 하지 않음은 물론이려니와 참을 것을 종용하지 말고, 놀리거나 비꼬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거나 한숨을 내쉬지도 말자. 아이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죄책감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엄마가 너무 힘들거나 슬프면 엄마도 치료를 받는다. 장애 아동과 우울증 엄마의 조합이 생각보다 꽤 많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둘째, 부모 자신의 역량을 키운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는 것에 많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좌절과 한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잘 자라나는 경우에도 이와 같은 부정적 경험이 불가피할진대 장애 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의 경우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많이 경험할 수 있다.

가령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은 아이가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겨진다. 선생님이 아이의 증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무라기만 하거나 엄마에게 아이의 문제점을 고쳐보도록 주문할 때 엄마는 정말로 난감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의 증상들에 대해서 이해를 시키고, 대처 방안 및 올바른 반응을 교육하고, 조언하며, 협조를 구하거나 부탁을 하자. 그렇게 하려면 부모인 당신의 역량이 강화돼 있어야 한다.

아이의 병에 대해서 공부하고, 담당 의사와 적극적으로 의논을 하며, 아이의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역량을 갖추자. 역량 있는 부모는 때로는 아이의 친구가 되고, 때로는 아이의 선생님이 되며, 때로는 아이의 의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셋째, 상황을 직시한다. 각종 장애나 질환으로 진단되었거나 치료받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는 현재의 상황을 분명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부인하거나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의 병이 사라지지 않는다. 치료가 두렵고 다소 실망스럽다고 해서 포기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 쉽다. 현재의 상황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을 짠다.

이와 같은 과정을 실천하면서 끊임없이 개선시켜 나가자. 그것이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해야 할 일이다. 비록 자녀가 장애를 갖고 있는 현실은 매우 슬프고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자녀와 함께 부모가 역경을 딛고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서 살아가는 삶은 역설적으로 더 즐거울 수 있다. 실제로 지금 현재도 많은 장애인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서 행복한 삶을 이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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