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의 정신건강도 함께 침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실망, 그리고 슬픔과 허탈감에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뒤집히면서 무서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광경을 생생하게 TV로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객실 안에서 구조를 기다렸던 많은 단원고교 학생들이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장면이 상상되면서 끔찍함과 무기력감,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죄책감을 경험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의 진료실에서도 기존의 우울증 환자들이 증상 악화를 호소했고, 몇 년 전에 완치되었다고 기뻐했던 공황장애 환자 한 명이 갑자기 재발되어 병원을 방문했다. 사회의 분위기는 또 어떠한가? 각종 행사들이 연이어 취소 또는 연기됐고, 공연이나 콘서트 또한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는 그야말로 침울한 분위기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온 국민 전체가 집단 우울 상태 혹은 집단 트라우마 반응에 휩싸인 것이다. 게다가 실종자 가족 혹은 희생자 유가족의 심정을 생각하면 더욱 우울해진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슬픔과 분노에 괴로워하고 있고,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한 줄기 희망을 점차 잊어버린 채 시신이라도 찾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생존자 역시 친구들을 지키지 못한 채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신음하고 있고, 죽음의 직전까지 갔다 왔다는 사실에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가슴이 먹먹하다고 호소하고, 잠이 오지 않으며, 자꾸 눈물을 흘린다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기자는 약 20년 전에 있었던 대구 가스 폭발 사건의 취재 현장이 자꾸 떠오르고, 당시 살려 달라는 한 여학생을 즉시 구조하지 못해 하반신 마비에 이르게 한 죄책감이 다시 커져서 소화불량, 불면증, 편두통 등의 각종 증상들을 호소했다. 어디 이 한 사람뿐이랴. 과거의 부정적 사건, 특히 커다란 심리적 상처를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이 금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다시 재현되고 증폭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 한마디로 정신건강의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위기에 압도당하거나 굴복하거나 주저앉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고, 보다 더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자. 우선 국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얻자. 그렇다.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위대한 민족이요 국민이라고 생각하자. 슬픔을 함께 나누면 서로 위안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비록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람들 때문에 현재의 비극이 초래되었지만, 그래도 더 많은 보통의 사람들은 상식적이고 이타적이며 도덕적이라고 여기자. 다음으로 눈여겨 볼 대상은 자원봉사자들의 존재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진도로 달려가서 무엇인가 도와줄 것이 없는지 살펴보고, 힘든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단원고교에서는 생존자 학생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최대한 겪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자원봉사 상담과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 역시 안산 시민들의 심리적 치유에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들 자원봉사자들은 결코 공을 세우기 위해서 혹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 행동하지 않기에 박수를 보낸다. 민간 잠수사들 역시 자신들의 자식이 바다에 빠져 있는 것처럼 여기면서 목숨을 건 구조 활동에 나서고 있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죽은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그들의 부모님들에게 엎드려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에 그저 살아 있기만 해도 고마운 자식의 존재에 대해서 깊은 깨달음을 얻은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자. 조금씩 관심과 에너지를 돌려보자. 하지만 결코 금번 참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6월에 월드컵이 열리고, 9월에 아시안게임이 열려서도 결코 잊지 말자. 그렇지 않고서 너무 쉽게 혹은 너무 빠르게 잊어지면 변화는 없고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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