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암마을, 한국의 전통이 살아있는 농촌마을(2)
외암마을, 한국의 전통이 살아있는 농촌마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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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입구 이전선 가옥과 주변모습 (사진제공: 아산시청·이왕기 목원대 교수)

◆전통마을이자 농촌마을로서의 문화유산적 가치

마을은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눠지는데 종가와 외암사당, 송화댁, 참판댁, 교수댁, 건재고택(영암댁), 참봉댁 등 예안이씨 양반가가 즐비하다. 안길과 샛길을 따라 둘러쳐진 살림집들의 돌담은 사람의 키 높이에 맞춰 적절한 폐쇄감을 주고 담쟁이덩굴 등이 어우러져 더욱 정감을 주고 있다.

외암리는 전통 건축부재를 이용해 건립된 반가와 민가가 혼재돼 있는 한국의 전형적인 전통마을이다. 반가는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조형과 기법을 지니고 있고, 민가는 주민들의 토속적인 기술과 기법을 이용해 건립한 것으로 구조적으로 지역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초가지붕을 이는 이엉기술은 진정성이 살아있는 귀중한 무형유산으로 현재도 마을에 전승되고 있다.

현재 69가구 중 농가가 38가구, 농사를 짓지 않는 일반가옥이 31가구이며 거주민은 모두 207명(남자 118명, 여자 89명)이다. 마을 내 가옥수는 모두 213동이며 이 중에 한옥기와 건물이 57 동, 초가가 128동 등으로 마을 내 건물 반 이상이 초가로 돼 있어 외부경관을 보면 농촌마을이라는 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가옥의 담장은 옛 주민들이 지표면에 형성된 수많은 괴석을 마을 현지에서 채취해 쌓았는데 총 연장은 약 6㎞이다. 그리고 걷어낸 돌로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논밭의 축대를 쌓은 것이 다른 마을과 독특하게 구별되는 경관이다.

▲ 외암마을 감찰댁과 식수 (사진제공: 아산시청·이왕기 목원대 교수)

또한 마을 주산인 설화산(雪華山)의 ‘華’자가 불을 상징하는 ‘火’ 와 발음이 같아 마을에 ‘화기(火氣)’를 가져온다고 생각해서 인공수로인 ‘물’을 끌어들여 ‘화기’를 제압하려고 했던 마을 조성방 법도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자연개천에서 인위적으로 물길을 끌어 조성한 인공 수로는 마을 안 거의 모든 가옥을 통과하면서 생활용수와 불을 끄는 방화수로 사용하기도 하고, 마당을 지나면서 곡수와 연못을 만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주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는 한 시대, 지역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류의 삶의 흔적이며 물을 주거문화에 주술적, 무형적, 유형적으로 이용한 탁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곳이 전통마을이자 양반마을로 잘 알려져 있는데 농촌마을로 표방할 수 있는 기본요소에 대해 목원대 이왕기 교수는 “외암마을이 양반마을이라고 할 때 하회·양동마을처럼 잘 갖춰진 것은 아니고, 조선시대 마을이라는 것이 농촌이든 양반 도시마을이든 기본적으로 집성촌이 있으면 종가가 있고, 신앙과 관련된 시설들(성황당, 솟대, 장승, 사당) 그리고 생산시설(방앗간이나 물레방아, 연자방아, 농토, 농장), 교육시설(서당, 정사, 서원) 등을 다 갖고 있는데 외암리는 이런 기본적인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전통마을”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농촌마을이라고 했을 때 농촌의 특색이나 시대상이 살아있고 그 마을의 제도나 풍습이 잘 남아있다면 양반집이 있다 할지라도 농촌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외암리는 살기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 지형조건을 기가막히게 이용해 농촌의 경관적인 모습, 그 지역이 갖고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마을이나 건축에 표현한 것들을 종합해 보면 농촌마을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잘 담겨져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또한 “농경지가 많이 있는 농촌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농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집집마다 농업에 관련된 시설들이 있어서 마을로서 완벽한 자조적인 삶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이라 고 덧붙였다.

신정미/ booniel@newscj.com

▶ 다음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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