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암마을, 한국의 전통이 살아있는 농촌마을(1)
외암마을, 한국의 전통이 살아있는 농촌마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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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암마을 (사진제공: 아산시청·이왕기 목원대 교수)

 외암마을이 2011년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등재되면서 아산시는 외암마을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 다양한 해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왜냐하면 이곳이 기호지방의 양반 마을로서의 독특한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이미 양동·하회마을이 2010년에 한국의 대표적 씨족마을이면서 양반마을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외암마을로서는 그곳 특유의 주제를 찾아서 나아가야 할 시점에 있다. 현재 외암마을은 우리나라 전통마을 중에서도 농촌마을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노력중이다. 이곳은 추사 김정희의 처가이자 명성왕후와 역사적으로 관련있고, 매스컴을 통해 건재고택의 소재지로 잘 알려져 있다.

 ◆충남과 수도권의 관문인 아산시에 속한 마을

충청남도 아산시는 한반도의 중앙부 및 충남의 최 서북단에 위 치하며 수도권과 충남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남쪽에 광덕산, 북쪽에는 영인산으로 둘러싸고 있는 남고북저의 지형으로 중앙 이 낮고 평평한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지형의 동쪽으로는 천안 시, 남쪽으로는 공주시, 서쪽으로는 예산군, 북쪽으로는 경기도 평택시와 접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산지역은 크게 구 온양군, 아산군, 신창군의 세 지역으로 나뉘어 왔다. 삼국시대부터 1910년대 중반까지 세 지역은 개별적으로 발전해 왔으나 일제의 지방제도 개편시 아산군으로 통합됐다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온양지역이 온양시로 승격 분리됐다. 현재의 아산시는 1995년 분리됐던 온양시와 남아있던 아산군 지역이 통합돼 재탄생하게된 것이다.

서해안고속 도로, 경부고속도로, 장항선 등으로 서해안 내륙지방의 수송기능이 강화됐고, 경부고속철도가 서부지방으로의 수송을 유리하게 하기에 아산시는 관광자원을 보유한 곳, 지역개발 잠재력이 풍부한 곳으로 지목받고 있다.
아산시 송악면에 자리한 외암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멀리서 바라보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주는 설화산(441m)이 넓은 들판과 나지막한 야산들 사이에 우뚝 솟아있다. 설화산은 봉우리가 다섯이라고 해서 오봉산, 붓끝 같은 봉우리 모양이라고 해서 문필봉으로 부르는데 이 때문에 예로부터 산 아래에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실제로 외암리는 조선후기 최고의 성리학 논쟁 중 호락논쟁의 거두 외암 이간(1677~1727)이 태어나 일생을 머무른 곳이다. 산 너머 설화산 동북쪽에는 고려말 최영 장군이 살다가 손녀사위이자 조선 초기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1360~ 1438)에게 계승한 맹씨행단이 있다.

▲ 외암마을 입구와 설화산 (사진제공: 아산시청·이왕기 목원대 교수)

◆예안 이씨의 집성마을

외암마을에 들어서면 단아한 전통마을의 품격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꿈속에 그려본 듯한 옛날 고향같은 전원적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시 근교에 입지해 있어서 마을을 다녀가기도 어렵지 않고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해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설화산을 중심으로 서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산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마을을 감싸 흐르다 마을 앞의 하천과 합쳐져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 물길을 따라 마을과 마을 인근에는 상당한 정도의 농경지가 형성돼 있다.

그래서인지 예안이씨들이 모여 살았던 집성마을인 외암리는 기와집과 초가가 혼재돼 있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15세기경부터 강씨와 육씨, 진씨 등이 살면서 형성된 이 마을은 16세기 중반 조선 명종때 선능참봉을 지낸 이연(?~1546)과 그의 아들 이사종(?~1589)이 입향, 이주한 이후 가문이 번창해 18세기 중반 이간 선생 대에 문중을 형성하고 예안이씨의 세거지가 됐다.

5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외암리는 원래 ‘오양골’로 불렀으나 대학자 이간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영봉정기를 따서 ‘외암(巍巖)’이라는 호를 사용한 이후 마을 이름으로 불렀는데 일제 강점기때 표기의 간편화로 ‘외암(外岩)’이 됐다.

구전에 의하면 원래 크고 높다는 뜻으로 외암(巍巖, 嵬巖)이라 하던 것을 일제가 그 의미를 퇴락시키고자 외암(外岩)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이곳은 본래 온양군 남하면에 속했다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개편으로 아산군 송악면에 편입됐고 현재 아산시 송악 면외암 1리는 외암골과 설화리를 포함하지만 국가지정 중요민 속자료 제 236호인 외암마을은 외암골만을 일컫는다. ‘설화리’ 는 2000년 주민들이 민속마을 지정에 반대해서 보존지구에 포함하지 않게 됐다.

대표적인 인물 이간은 관직과 경연관에 나갔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생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머물렀는데, 남당 한원진과 벌인 논쟁에서 ‘인간과 사물의 본성은 같은 것(人物性同論)’이라는 입장을 견지했고 이후 낙론의 거두로 부각됐다.

19세기 이후에는 후손들이 번성하고 관직에 진출했는데 지금 마을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고택이 이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때문에 붙여진 택호에 당시 집주인의 벼슬을 붙인 것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어 당대 예안이씨 문중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신정미/ booniel@newsc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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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krdkfma 2013-12-20 23:27:28
우리 고유의 색깔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마을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외국여행을 가는 이유도 외국의 이색적인 풍경때문에 그렇게 해외를 가듯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도 독특하고 고풍스러운 우리의 풍경들을 이색적인 매력으로 느낄수 있게. 풍경이 너무 근사하네요

햔수 2013-12-20 23:06:28
초가집이닷. 요즘도 정말 초가집이 있네요? 정겨움이 느껴지네요.

도레미 2013-12-20 22:49:48
초가집이 너무나 정겹네요.
전통적인 초가마을 잘 보존되었음 좋겠네요.

정지영 2013-12-20 22:49:46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이군요
아무 걱정 근심없는..

김경 2013-12-20 22:35:06
마을이 참 이쁘네요.초가집도 아주 이쁘구요 가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