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한국의 역사·문화’ 사진전을 보고

이재준 언론인

 
닉우트는 1972년 6월 월남 전쟁 당시 AP통신 사진기자였다. 그는 공습으로 온몸에 중화상을 입은 아홉 살짜리 여자 어린이가 벌거벗은 채 절규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네이팜 소녀’로 불린 이 사진 한 장은 월남전쟁의 비극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닉우트는 이 사진으로 신문기자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받았다.

2010년 8월 아프간에서 탈레반에게 코가 잘린 한 소녀의 사진이 타임지에 실렸다. 탈아이샤라는 소녀는 12세의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탈레반 남성과 결혼했지만 학대를 받고 도주했다가 붙잡혔다. 남편은 잔인하게도 소녀의 코와 귀를 자르고 밖에다 버린다.

죽어가던 소녀는 미군 의료진에 의해 구해지며 타임지를 통해 탈레반의 악행을 전 세계에 알린다. 소녀는 서방세계의 인도적 도움을 받아 최근 코와 귀 성형수술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멀티미디어시대 사진 한 장이 사회에 던지는 영향력은 감소했다고는 하나 그 생명력은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사진은 과학이 만든 거짓이 없는 역사이자 시대의 거울이다. 이제 사료로서도 가치가 인정되고 있으며 국보·보물 이상으로 대접받는 시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최근 국가기록원은 연세대 연구원이 소장 중인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기록물 1만 9천매를 국가 지정물로 보존하기로 했다.

서울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리고 있는 천지일보 주최 ‘100년 전 사진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시에 나온 미공개 사진들은 개화기 풍물과 일본 제국주의 만행 등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료로서뿐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듯 충격과 감동을 준다.

가장 충격적인 사진은 관동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한국인에게 행한 잔인한 학살행위다. 이를 보고 분노하지 않을 한국인은 없을 게다. 또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간 한국의 젊은 위안부들의 귀중한 사진이 여러 점 공개됐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이 사진은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1백여 년 전 일본에게 우리 민족이 받은 수모는 이번 전시에 나온 사진 안에 많이 투영된 듯싶다. 왜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군화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을까. 5백 년 성리(性理) 공리공론에 침잠(沈潛)해 실학과 과학을 외면하고 대문을 굳게 잠근 쇄국의 결과가 아닌가. 근대화에 뒤져 국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진들은 우리에게 침통한 역사적 반성과 교훈을 주고 있다.

일제의 강점과 남북 분단에 희생된 천재 무용가 고(故) 최승희의 사진에서는 시공을 초월한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중국 돈황석굴을 여행하고 돌아와 구현했다는 관음상(觀音像)의 자태는 최승희의 아름다움과 열정이 물씬하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안타깝게 희생된 최승희는 이번 사진 여러 장으로 화려하게 환생한 느낌을 준다. 서당에서 공부를 하는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년들의 모습은 지금의 서울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사진들이 보다 많은 국민에게 보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귀중한 사진을 방대하게 모아온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정성길 명예박물관장의 노고와 사진 사료의 귀중함을 인식해 전시회를 마련해준 천지일보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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