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회남왕과 형산왕, 강도왕이 연루된 모반이 드러나자 장탕이 그 사건 책임을 맡았다. 무제는 그 사건 연루자 일부를 면죄시키려 했으나 장탕의 반대에 부딪쳐 그의 의견대로 처리를 했다. 그처럼 재판에 관한 일이라면 중신들의 간섭을 물리치고 결재했다. 그러므로 그 공은 대부분 장탕의 것이 되었다.

무제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져 그는 드디어 어사대부로 승진했다. 장탕이 대궐에 들어와 정무를 건의할 때 화제가 재정 문제로 들어가면 무제는 식사하는 것도 잊고 귀를 기울였다. 승상은 있어도 이름뿐이고 중요한 일은 거의 다 장탕의 생각대로 결정되었다.

그 즈음 백성들이 생활고에 시달리자 폭동을 일으켜 사회 불안이 높아지고 있었다. 조정이 부흥계획을 세워도 그 성과가 오르기도 전에 악덕관리가 백성들을 착취하여 모처럼의 조정의 계획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 때마다 엄벌로 다스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 결과 위로는 조정의 고관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장탕을 악덕의 근원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장탕이 앓아누우면 무제가 손수 병문안을 갈 만큼 황제의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그 무렵 흉노가 화의를 청해 왔다. 그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의전회의가 열렸다. 박사인 적산이 먼저 입을 열어 흉노의 화의를 수락함이 마땅하다고 아뢰었다.

무제가 그 이유를 묻자 적산이 대답했다.
“예로부터 무기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일찍이 고조는 흉노 토벌을 위해 군대를 일으키셨지만 평성에서 고전에 빠져 결국은 정전 협정을 맺고 물러났습니다. 해제‧여태후의 시절에는 전쟁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은 평화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시대에는 또 다시 흉노와의 싸움을 벌여 북쪽의 변두리는 황폐해졌습니다. 그리고 경제의 시대에는 오‧초 7국의 난이 일어나 황제는 황태후의 지시를 받기 위해 태후가 거처하는 궁으로 매일 왕래했습니다. 가까스로 오‧초 7국의 난을 진압하자 싸움에 지친 경제는 그 뒤 두 번 다시 전쟁을 벌이지 않았기에 백성들은 마음 놓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폐하께서 흉노를 무찌르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지만 그 결과 나라의 재정은 바닥나고 백성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화평을 수락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무제가 시선을 돌려 장탕에게 그 문제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적산은 학문을 겉핥기로 배워 세상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자 적산이 반박했다. “저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장탕은 어떻습니까? 그의 충성심이야말로 겉치레가 아닙니까? 전에 회남왕과 강도왕의 반란 사건을 조사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법을 무리하게 적용해서 제후들을 꾸짖은 결과 부모 자식 사이에도 의심하게 되었고 중신들은 불안에 휩싸여 소신껏 나랏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증거입니다.”

무제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 적산에게 물었다. “그대를 한 군의 태수로 임명하면 흉노의 침략을 막을 수 있겠는가?” 적산이 대답했다. “그것은 못 하옵니다.” 무제가 다시 물었다. “현령이라면 어떤가?” “그것도 무리이옵니다.” “그렇다면 요새의 수비대장이라면 어떤가?”

그 때 순간적인 적산의 생각은 이랬다. 황제의 뜻을 더 이상 어기다가는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무제는 그 말을 듣고 적산을 곧장 북쪽 요새의 수비대장으로 보냈다. 한 달쯤이 지났다. 흉노는 요새에 쳐들어와서 적산을 죽였다. 그 일이 벌어진 뒤부터 여러 신하들은 장탕의 확고한 권세에 두려움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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