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영성은 양나라 사람으로 경제 때 낭과 알자 등에 임명되어 조정에 들어왔다. 그는 성품이 유달리 강해서 상관쯤은 무시했으며 자신은 상관이 되면 부하를 혹사시켰다. 그는 교활한 수법으로 남을 짓밟고 점차 승진하여 제남의 도위가 되었다.

그 무렵은 질도가 제남의 태수로 있었다. 그 때까지는 도위가 태수를 배알하려면 한 계급 아래인 현령처럼 반드시 걸어서 관청 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도위라 하더라도 질도를 그처럼 무서워하였다. 그런데 영성은 부임하자마자 질도에게 자신이 상관처럼 행동했다. 질도는 평소부터 그의 소문을 듣고 있었으므로 융숭하게 대우하여 친구로 대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질도는 죽었다. 그러자 장안의 황족들은 다리를 쭉 뻗고 법을 무시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경제는 그 대책으로 영성을 중위로 임명했다. 영성은 질도처럼 엄격했으나 질도만큼 깨끗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황족이나 호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경제가 죽고 무제가 즉위했을 때 영성은 내사(수도 장안의 지사)가 되었다. 영성의 관활 내에 있던 황후 집안의 귀족들은 영성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곤겸(머리를 깎고 칼을 씌우는 형벌)에 처하는 데 성공을 했다.
당시는 9경급의 대관이 죽을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자살하는 것이 통례였으며 형의 집행을 기다리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하므로 영성도 중죄를 받은 것이니 두 번 다시 등용이 될 가망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심 끝에 탈옥하여 통행증을 위조하고 감쪽같이 관문을 통과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 다음 그는, “관리가 될 바에는 대신이어야 하고, 장사꾼이 되려면 백만장자가 되지 않고서는 사나이라고 할 수 없다”고 큰소리치면서 황야를 개간한 논밭을 사들이고 그 땅을 가난한 농부들에게 빌려 주어 수천 세대의 소작인을 둘 정도가 되었다.

그로부터 수 년 뒤 대사령이 내려 영성은 죄인에서 해방되었다. 그 무렵에 그는 이미 수천금의 재산을 모아 약한 자들을 돕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관리들의 횡포를 억제하고 외출할 때에는 수십 기의 부하를 거느리고 다녔다. 그 지방의 백성들은 태수보다 영성 명령에 더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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