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균 ㈜동명에이젼시 대표이사

 

박근혜 대통령의 65세 이상 어르신에 대한 기초연금 월 20만 원 지급공약 수정으로 대통령이 사과하며 정부가 복지예산 마련에 곤욕을 치루고 있는 이 마당에 새누리당과 고용노동부가 육아휴직 대상 연령을 현행 6세 이하에서 9세 이하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인데, 2010년 2월 3세 미만에 적용하던 육아휴직을 만 6세 이하로 범위를 넓힌 지 3년 만에 다시 확대하는 것이다.

여성의 고용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정부와 여당의 설명이지만, 법이 개정되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육아휴직 대상이 가장 넓게 적용되는 국가가 된다. 노르웨이·캐나다·프랑스·일본 등 대다수 OECD 국가들은 육아휴직 규정이 3세 이하이며, 9세까지 육아휴직 허용은 덴마크가 유일하다. 이러한 사실에도 우리 정부와 여당이 이 법안 마련에 합의했다니 우선 법안 제정에 앞서 국민여론, 여성계, 기업계와 노동계 등의 다양한 의견을 다시 한 번 수렴해 과연 실행에 문제점은 없는지 재고해 보기 바란다.

사실 육아휴직을 9세까지 확대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면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과연 이를 수용할 수 있는지는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실천 가능성이 어려움에도 이런 법안 제정에 당정이 합의했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고, 사회와 국민적 동의가 없는 데도 이런 법안 마련에 합의했다면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안을 제정함에 있어서 우리 사회 현실에 적합한지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를 담은 법안일지라도 창조적인 발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당정의 합의소식을 접한 중소기업중앙회는 “가뜩이나 사람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으로선 대체인력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육아휴직 확대는 인력 부족을 심화시키고, 여성 인력의 채용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규제가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기업의 부담과 혼란이 크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도 회사에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 다 못 쓰는 엄마들이 허다한데 자칫 여성 취업 길만 막힐까 걱정스럽다는 반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초등학교 3학년까지 육아휴직을 확대하는 것은 영·유아 보육을 위한 제도의 근본 취지에 배치되는 것”이라며 “특히 현행법에 명시된 경과 규정을 한 번도 적용하지 않고 개정하는 것이어서 기업의 부담과 혼란이 클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당정은 이에 따른 기업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육아휴직 대체인력뱅크 운영을 지원하기로 합의하고, 대체인력의 수당도 현행 월 20∼40만 원에서 30∼60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한다. 문제는 대선공약 이행에 필요한 복지예산 마련에도 끙끙대는 정부가 선심성 정책만 보여주어서는 아니 된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 국민적 합의와 소요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 때 발표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앞세우고 실천하지 못하면 국민에게 정부의 불신만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집권여당과 정부가 국민복지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 개발과 관련 법안 마련에 앞장서는 것은 국민에 대한 봉사요 책임이지만, 실현가능성과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것은 당정이 국민의 신뢰만 잃게 된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솔직히 이번 당정의 합의안은 현재 우리가 처한 여건에서 실현 가능한 것인지 숫자놀음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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