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엄마나 아빠 앞에서는 말도 잘 하고 강한 척 하는 아이가 집밖에 나가서는 말을 잘 하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 누가 보면 정말 버릇없는 아이라고 생각할까봐 걱정이 되고, 이제 여섯 살인데 큰소리로 인사도 잘 하고, 예의 바른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바람이다.

집밖은 아무래도 집안보다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친근한 가족 대신에 낯선 사람들이 많이 있고,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보다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공간이 바로 집밖이다. 사실 우리 어른들도 집안에서의 모습과 집밖에서의 모습이 매우 다르지 않은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집밖에서는 어느 정도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취학 전의 아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는 것은 사실 예의범절의 문제라기보다는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은 상당히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다. 아이의 경우 ‘쑥스럽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내일부터는 꼭 인사할게요”라고 약속했다가 다음날 번번이 약속을 어기곤 한다. 그래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물어 보면, “여태까지 인사를 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인사를 하게 되면,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해요”라고 변명을 한다. 그렇다면 이는 인사하기에 대한 부끄러움 외에 다른 사람들 내지는 사회적 상황(즉 집밖이나 낯선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제일 먼저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네가 인사를 해도 아무도 너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내지는 “네가 집에서 말하는 정도라면 정말 말을 잘 하는 것이야. 집밖에서 똑같이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러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소리 내어 말해도 괜찮아” 등의 말을 자주 들려주자. “너는 집에서는 곧잘 말하는데, 왜 밖에만 나가면 기가 죽어서 말을 제대로 하지 않니?”라고 물어보는 것은 아이를 책망하거나 비난하는 의미가 더 크므로 피해야 할 표현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점진적으로 인사 대상을 늘려가는 것이다. 아이가 인사를 편하게 할 만한 가장 가까운 이웃 어른을 생각하게 하자. 그래서 실제로 그 어른에게만 인사를 거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한 명의 어른에게 성공한다면, 점차 대상을 늘려 나갈 수 있다. 만약 아이가 한 명의 어른에게 인사하기 시도를 하다가 실패했다면, 그 어른을 집으로 초대해서 아이와 익숙해지게끔 하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아이가 그저 옆에서 어른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홈그라운드인 집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방법은 ‘부모의 모범 보이기’다. 즉 부모가 이웃이나 친구를 만날 때 먼저 다가서서 편안하고 즐거운 표정과 말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그런 다음에 “너도 엄마처럼 인사해”라고 격려해 보자. 아이가 당장 따라 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으로는 ‘아! 우리 엄마처럼 아는 사람들을 보면 인사를 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인식된 행동의 틀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단축하는 중요한 요인은 다른 사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사람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얘기해 줄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고, 나쁜 행동을 하며, 너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식보다는 다른 사람들은 대개 믿을 만한 존재로서 좋은 행동을 하며,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절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엔가 우리 아이는 인사를 잘 하는 사랑스런 아이로 변모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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