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종목 미투 운동 이후에도

성폭력 등 인권침해 이어져

인권위, 개정지침 이행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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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스포츠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의혹 관련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과거 한 쇼트트랙 스케이팅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오랫동안 그의 코치로부터 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려 왔음을 폭로했다. 이후 유도·태권도·정구·양궁 등 스포츠 종목 전반에서 미투(Me Too,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폭로하고 그 심각성을 알리는 것) 운동이 번졌다. 이에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스포츠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벌이고 선수들의 인권 보호·증진을 위한 정책 권고를 내렸지만, 스포츠계에선 여전히 언어폭력·성폭력을 비롯한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인권위는 올해 ‘스포츠 인권 헌장’을 개정하고 교육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각 시·도 교육감, 대한체육회장, 대한장애인체육회장,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에게 가이드라인 이행을 권고했다. 1일 인권위에 따르면 이번에 개정된 가이드라인은 체육지도자의 인권옹호 책임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체육지도자가 스포츠 기량 및 기술 향상을 돕는 지도자일 뿐 아니라 모든 참가자를 인권침해와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인권옹호자라는 시각에서다.

이와 관련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 관계자는 본지에 “체육 현장에서 그간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인권침해를 막기엔 부족한 점들이 많았다”며 “스포츠에서 인권 이행은 미투 등 특정한 사안에만 빤짝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행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개정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체육계 만연한 반인권적 행위들

앞서 인권위가 지난 2019년 장애인, 직장운동경기부, 초중고 학생,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광범위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운동선수들은 폭력·성폭력 피해뿐 아니라 사생활의 과도한 통제, 불합리한 근로계약 관행 등 반인권적 환경에 노출돼온 것으로 나타났다.

4924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 선수 31%(1514명)는 언어폭력, 33%(1613명)는 신체폭력, 9.6%(473명)는 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체폭력은 응답자 3명 중 1명(1613명)이 당했을 만큼 심각했다. 특히 신체폭력을 경험한 선수 중 15.8%(255명)는 일주일에 1∼2회 이상 상습적으로 폭력을 당한다고 답했다. 가슴이나 엉덩이 등을 강제로 만지는 것, 신체 부위를 몰래 혹은 강제로 촬영하는 성폭력뿐 아니라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다른 선수 집단도 마찬가지다. 초중고 선수의 경우 15.7%가 언어폭력, 14.7%가 신체폭력, 3.8%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같은 해 선수 406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운동경기부 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선수 중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욕, 비난, 협박 등의 언어적 폭력피해 경험자는 33.9%(1251명 중 424명)에 달했다. 언어적 폭력의 가해자는 감독(55.0%), 선배 선수(51.9%), 코치(40.8%) 순이었다. 

여성들은 불필요한 신체접촉(8.4%, 52건), 자신의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하거나 팔베개, 마사지 등(5.5%, 34건), 특정 신체 부위·외모 등에 대한 성적 농담(10.5%, 65건), 듣고 싶지 않은 음담패설, 성적 비유 등(7.6%, 47건), 특정 신체 부위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성희롱(3.8%, 24건) 등 사례도 다양했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 이행 권고

이후 인권위는 스포츠 인권 헌장과 가이드라인 개정에 착수했다. 변화한 체육계 환경과 스포츠에 참여하고 향유할 권리 관련 내용, 다양한 인권문제 대응방안 등을 새롭게 반영하고 현실 적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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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코치 성폭력 사건 의혹 관련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개정된 내용을 살펴보면 개정 헌장은 스포츠의 다양한 긍정적 가치를 담았다. 스포츠권을 비롯해 스포츠 활동과 관련한 모든 사람의 권리와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 등의 책무를 명시했다. 아울러 국가 등은 스포츠의 긍정적 가치가 왜곡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적합한 틀과 제도를 마련하고, 정책을 구현해야 함을 적시했다.

또 개정 가이드라인은 스포츠 분야의 폭력과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해 체육단체 등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담고 있다. 세부적으로 ▲인권옹호 담당자와 부서를 정하고 인권침해 예방 전략과 정책을 주기적으로 수립할 것 ▲적절한 대응체계와 매뉴얼을 마련할 것 ▲인권침해가 발생하면 피해자 보호 및 적절한 권리구제 방안을 모색할 것 등이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체육단체 등은 체육시설 이용과 프로그램에 참여 기회 제공 등 관련 정책을 수립·이행해야 할 것,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스포츠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 등을 반영했다.

이어 인권위는 교육부 장관, 문체부 장관, 각 교육감과 체육회장,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에게 개정된 헌장과 가이드라인을 채택·이행하고 선수와 체육지도자, 선수관리 담당자 등 체육 관련 종사자에게 이를 교육할 것을 권고했다. 또 산하기관에서도 이를 적절히 이행하도록 관리·감독하고, 기관평가에 반영하는 등 ‘모두를 위한 스포츠’가 정착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본지에 “그동안 스포츠 폭력 및 성폭력 예방 가이드라인, 학생 선수 학습권 보호 가이드라인 등 3가지로 구성되면서 정책 행동규범 이행지침 등이 분산돼 있었으나 현장에 맞춰 이를 하나로 통합했다”며 “또 스포츠계의 불평등과 폭력 문제를 주목하고 체육단체 등에 대한 지침이 추가됐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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