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서

‘정신·행동 장애’ 범주로 분류

“표본 적어 유의미하지 않다”

통계·실태조사 권고도 불수용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성전환자를 뜻하는 트랜스젠더가 현행 통계청 분류상 ‘정신장애’로 분류된 가운데 통계청이 이를 개정하라는 인권위 권고에 사실상 불수용 뜻을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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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12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21c 뮤지엄 호텔 화장실에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그들이 선택한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의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출처: 뉴시스)

26일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행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서 성전환증을 ‘정신·행동 장애’ 범주 중 하나인 ‘성인 인격·행동의 장애’ 중분류 아래 ‘성주체성 장애’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인권위는 통계청이 관리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개정해 성전환증을 정신장애 분류에서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면서 성전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고 혐오와 차별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청장은 “국제질병분류(ICD) 제11판의 반영 시 검토하겠다”고 하면서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제9차 개정의 고시에는 반영이 어렵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5년 주기로 개정되며 제9차 개정은 오는 2025년 7월 고시를 거쳐 2026년부터 적용된다.

인권위는 개정 이유로 해외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의학적 접근이 변화하고 있는 점도 들었다. 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년 정신장애 진단·통계 편람 제5판에서 ‘성주체성 장애’라는 용어를 ‘성별 위화감’으로 개정한 바 있다. 

이어 세계보건기구(WHO)도 2019년 국제질병분류 제11판에서 ‘정신 및 행동 장애’의 범주에 있던 ‘성전환증’ ‘성주체성 장애’를 모두 삭제했다. 그 대신 성 건강 관련 상태 범주를 신설하고 그 하위에 성별 불일치, 아동의 성별 불일치, 상세 불명의 성별 불일치로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된 진단 코드를 별도로 두기로 했다.

◆‘관련 조사 신설’ 등도 줄줄이 불수용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다른 권고 역시 국무총리실과 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통계청 등 정부 각 기관이 불수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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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5일 서울시청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가운데 보수교계가 동성애 반대를 외치며 ‘맞불집회’를 열었다. 

앞서 인권위는 중앙행정기관 등이 수행하는 국가승인통계조사·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 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침을 마련할 것을 국무총리실에 권고했다. 또 각 기관이 시행하는 국가승인통계조사 등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관련 조사항목을 신설할 것을 복지부·행안부·여가부 장관과 통계청장에게 주문했다.

그러나 이들 정부 부처들은 각 부처 실태조사의 모집단이 되는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성별 정체성을 별도로 조사하지 않고 있는바, 표본이 적어 성별 정체성 등을 조사하는 건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승인통계조사 등에 성별 정체성 등과 관련한 조사항목을 추가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와 조사의 실효성 측면에서 상당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기에 당장 실행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인권위 차별시정국 성차별시정과 관계자는 본지에 “인권위가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긴 했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선 이번에 처음으로 권고를 내린 것으로 안다”며 “이와 관련 정부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는데, 국가가 각종 정책을 펴려면 우선 연구·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이들을 조사하는 게 어려운 일은 맞지만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측은 이번 정부 부처의 입장에 대해 “권고를 불수용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거나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을 거듭 천명한다”고 밝혔다.

#성전환자 #트랜스젠더 #정신장애 #개선 권고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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