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한파 등 이상기후 심화

빈곤·취약계층에 피해 가중

“천재냐 아니냐에 대응 극명”

인권위, 취약계층 보호대책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권고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기후위기는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닌 예측 가능한 재난입니다. 최근 기후위기로 빈곤·취약·소외계층에 피해가 더욱 가중되는 만큼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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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등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 인근 빌라촌에서 한 주민이 침수피해로 어지럽혀진 반지하 방을 정리하다가 잠시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천지일보 2022.08.10

오늘날 기후위기가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4일 김재석 국가인권위 사회인권과장이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전환과 개선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는 산업화 대비 이미 1도 이상 상승했고,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2040년 안에 1.5도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지구 온도가 2도 상승하면 해수면이 7m 상승해 대다수의 해안도시가 사라지게 된다.

학계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바다에 흡수돼 해양생물이 죽고, 6000만명이 말라리아에 노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현재 시점에서 지구의 온도가 3℃ 올라가면 아마존 우림지대가 사막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가뭄이 찾아와 많은 사람과 생물이 기근으로 사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에 국제사회는 인류가 감내할 수 있는 지구 온도의 한계점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상승으로 보고, 가능한 1.5도 상승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합력해야 한다는 파리협정을 체결했다. 우리나라도 1.5도 목표에 부응하고자 ‘탄소중립’ 이행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후위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국내에선 피해에 대응할 자원이 부족한 저소득층·야외노동자·여성·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기후위기와 인권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김재석 인권위 사회인권과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 예로 냉난방이 잘 구축된 집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출퇴근을 자차로 이용하는 사람 등은 날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지만, 주거환경이 열악하거나 근무여건이 외부에 노출되는 사람들일수록 폭염·한파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 유발인자가 인간들의 활동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재난과는 분명 다르다”며 “예상치 못하는 천재지변과 달리 정부 간 협의체 등에 의해 충분히 예측되는 재난이므로 시간은 걸리겠지만 미리 준비해 대응해나갈 수 있는 문제로 보여진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취약계층에게 집중되면서 국가 차원에서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산업전환의 과정에서 특정 산업의 노동자나 특정 지역이 부담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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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2.07.05

이와 관련 네덜란드 대법원은 정부가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 요구 수준보다 낮게 설정한 것은 국제협약에 따른 자국민 보호 의무를 어기는 것이므로 목표를 더 높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자국 법률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만 설정한 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추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폐지한 시행령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생명권·행복추구권·환경권·평등을 위반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위원장 송두환)는 4일 대한민국 정부(대통령)에 기후위기로부터 인권을 보호·증진하는 것을 기본 의무로 인식하고 대응해달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날 인권위가 발표한 의견표명에 따르면 기후위기는 생명권·식량권·건강권·주거권 등 직간접적으로 인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기후위기를 인권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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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 지도. (제공: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천지일보 2022.07.20

의견표명 결정문은 IPCC 제6차 평가보고서(2022년)에서 발표된 국제기준을 고려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의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 설정하고, 2030년 이후의 감축목표도 설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래 세대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서다.

아울러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할 때는 기업뿐 아니라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한 계층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 측정 및 평가 결과와 온실가스 배출 관련 정보 등을 통합적인 정보제공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공개해 모든 사람이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이용하게 해야 할 것을 명시했다.

김현주 인권위 사회인권과 담당자는 “기후위기에 관한 인식에 따라 위기에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 천재지변으로만 여긴다면 이상기후가 생기면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여길 수 있지만 인권의 문제라면 국민의 생명권 등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게 정부 의무가 되므로 관련 정책이나 예방, 대응 자체가 달라진다”며 “인권 문제로 인식되면 더 보장할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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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현지시간)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있는 기아대응행동(ACH)이 운영하는 영양실조안정센터에서 최근 심각한 가뭄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소말리아에서 올해 45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뉴시스)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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