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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제54회 국가 조찬기도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제54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은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자유민주주의 수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거룩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성도 여러분께서도 지혜를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올해로 50년이 넘었다. 그리스도인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가조찬기도회가 국가권력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독재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목회자 다수가 권력 앞에 굴종하며 정교(政敎)분리라는 헌법 제202항에 정면 배치되는 불법을 몸소 실천해온 역사를 되돌아볼 때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인이 국가와 민족, 위정자를 위해서 기도한 것은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지속돼왔다. 1896년 고종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만수성절기념식에서 기독교인들은 조선의 자주독립과 국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개최했다. 이 시기의 구국기도회는 1905을사늑약을 앞두고 각 교회마다 개최했던 구국기도회나,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초창기 국가를 위한 기도회는 민족의 자주독립에 대한 염원과 밀접하게 맞닿아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와 지도자의 염원을 담은 기도회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교세를 확장한 기독교는 1937년부터 무운장구기도회등을 통해 내선일체와 신사참배를 앞세운 일본제국주의의 승전과 일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퇴락한 조선왕조 말기에 개최된 기도회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염원을 담았다면, 193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무운장구기도회류는 불의한 권력에 순응하고, 권력에 편승하여 사익을 얻기 위한 굴욕의 역사였다는 설명이다. 공식적으로 국가조찬기도회는 미국의 국가조찬기도회(National Prayer Breakfast)를 본 따 1965227일 처음으로 열었다. 초창기에는 기독교와 가톨릭교회가 함께 참여하는 범기독교 행사였다. 그러나 이 기도회는 다음해 대통령조찬기도회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한국 개신교는 이때부터 이미 국가권력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국가조찬기도회를 주최한 초창기 설교자는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실력자를 찬양했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선포하며 국가조찬기도회는 1980년 집권한 신군부 시절 다시 개인을 위한 기도회로 노골화됐다. 19808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20여명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열렸다. 이 조찬기도회는 KBS·MBC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까지 됐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기도회를 공중파가 생중계했으니 전두환은 한국개신교를 통해 확실하게 국가지도자로 인정받은 것이 됐다. 그들은 전두환을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는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으로 인해 권력을 잡은 신군부를 목회자들이 노골적으로 두둔한 행위로 한국 개신교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오욕과 굴종을 남겼다

이후 대통령들은 그동안 관례적으로 매해 열리는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보수 정권 대통령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도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종교와 권력이 이른바 공생관계였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종교가 집권 세력을 찬양하는 도구가 돼 이런 협력을 바탕으로 이익을 취하는 과정이다. 최근까지도 종교는 보수 정치권의 정치적 요구를 종교화하는 수단으로, 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요구를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기독교 이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세워진 기독교 국가라고 주장하는 극우 개신교의 주장과 어쩐지 일맥상통하다. 

전북대 법학전문대학 송기춘 교수는 지난 2012년 열린 학술 심포지엄에서 국가조찬기도회의 헌법적 문제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겉으로는 전형적인 기독교 예배형식이지만 정교유착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국가를 위한 기도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말에는 하나님의 사랑’ ‘한국교회의 역할 모색등 노골적인 종교적 발언이 담겨있다. 종교가 거대 권력으로 성장하면서 국가의 정책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국가권력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기도회를 개최하는 것은 정교분리 원칙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종교가 성도보다 권력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본질을 잃은 것이 되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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