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은 인플레에 긴축 행보
경기침체·자금경색에 베이비스텝
연준 FOMC 의사록 영향 미친 듯
내년 경제성장률, 2.1%→1.7%로
최종 금리, 3.50~3.75% 수준될 듯
1년 3개월간 금리 2.75%p 인상
내년 긴축에 대출금리 9% 공포

image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시작에 앞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올해 마지막 금통위를 열고 6회 연속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 (사진기자협회)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24일 한국은행이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올렸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했다. 사상 처음으로 여섯 차례 연속(4·5·7·8·10·11월)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기준금리는 2008년 11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3.25%를 기록했다. 

한은의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 단행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통화 긴축 속도 조절 가능성과 더불어 원/달러 환율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점, 자금·신용경색 위험,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 등이 고려됐다. 

한은은 이날 오전 서울 삼성본관 한은에서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현재 연 3.00%인 기준금리를 3.25%로 0.25%p 올렸다.

앞서 2020년 3월 금통위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p 낮추는 ‘빅컷(1.25→0.75%)’에 나섰고, 같은해 5월 추가 인하(0.75→0.50%)를 통해 2개월 만에 금리를 0.75%p 내렸다. 이후 아홉 번의 동결을 거친 이후 지난해 8월 15개월 만에 베이비 스텝에 나서면서 ‘통화정책 정상화’ 시작을 알렸다. 이후 기준금리는 작년 11월, 올해 1·4·5·7·8·10월과 이날까지 약 1년 3개월 사이 총 2.75%p 높아졌다.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은 것은 물가 오름세가 뚜렷하게 꺾이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109.21)는 작년 같은 달보다 5.7% 오르는 등 연일 고공행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향후 1년의 물가 상승률 전망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인)도 이달 4.2%로 10월(4.3%)보다 낮아졌지만, 7월 역대 최고 기록(4.7%) 이후 다섯 달째 4%대를 유지하고 있다.

금리 인상 등으로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를 억누르지 않으면 물가 눈높이에 맞춰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 임금 등이 줄인상돼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image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기자협회)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빅 스텝 직후 “5% 이상의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우리나라 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는 만큼 물가 중심의 경제정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한미 금리차가 역전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3.75∼4.00%로 상단이 한국보다 1.0%p 높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p 올려잡았지만 연준이 12월 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밟으면 격차는 최대 1.5%p까지 커질 수 있다. 

더 높은 수익률을 추종하는 자본의 특성상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를 사용하는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1%p 이상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이처럼 6연속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했지만, 10월에 이어 두 차례 연속 빅 스텝은 나오지 않았다. 경기침체 국면에 이미 진입했다는 경고음이 커진 데다 채권시장 돈줄이 마르고 신용 경색 리스크가 커지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1일 이 총재는 ‘한은·한국경제학회 국제컨퍼런스’ 개회사에서 “긴축적 통화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물가안정 기조를 공고히 하고 인플레이션 수준을 낮추는 것은 한은의 우선 과제”라면서도 “고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의 긴축 하에서 금융시장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image
25일 기준금리 인상 설명하는 이창용 한은 총재(왼쪽)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설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AP=연합뉴스). 2022.08.28

특히 이날 새벽 공개된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11월 정례회의 의사록 내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달 자이언트 스텝 결정 당시 다수의 FOMC 위원들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적절하다는 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13∼14일(현지시간) FOMC에서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보다는 빅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한 가운데 한은은 내년에도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 압력이 당장 해소되기 어렵고, 연준의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져 최종 금리 수준이 3.50∼3.75%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내년 물가 오름세는 둔화하고 경기 침체 부담이 부각되면서 기준금리 인상은 한 번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은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1.7%를 제시했다. 기존 2.1%(8월 전망치)보다 0.4%p 낮고, 2020년 역성장 이후 최저 수준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 국내 내수 경기가 급격히 동력을 잃어가면서 내년에는 우리 경제가 경기침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한은이 내년 한두 번의 금리 인상을 진행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image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5일 서울 한 시중은행 은행창구 모습 ⓒ천지일보 2022.08.25

이번 인상에 따라 가계 대출자의 이자부담은 최소 36조원 불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p 뛰고, 대출금리 상승 폭도 같다고 가정할 경우 전체 대출자의 이자는 약 3조 3천억원 늘어난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에 은행·비은행 금융기관의 변동금리부 대출 비중 추정치(평균 74.2%)를 적용해 산출한 결과다.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가 2.75%p 오른 만큼, 1년 3개월간 늘어난 이자는 총 36조 3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한은은 기준금리가 0.25%p 오르면 가계대출자 1인당 연간 이자 부담은 평균 약 16만 4천원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작년 8월 이후 기준금리가 2.75%p 오른 만큼 대출자 한 사람의 연이자도 180만 4천원씩 불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준금리 인상이 계속될 경우 내년 말까지 민간의 이자 부담이 33조 6천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금리 인상에 따른 기업대출 이자 부담액은 올해 9월 33조 7천억원에서 내년 12월 49조 9천억원으로 16조 2천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한계기업의 이자 부담액이 5조원에서 9조 7천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image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천지일보 2022.6.21

이러한 가운데 대출 금리는 7%대를 넘어 8%대에 육박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23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5.70~7.83%로 상단이 8%대에 근접했다. 신용대출 금리(1등급·1년, 연 6.218∼7.770%) 역시 8%대에 바짝 다가섰고,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연 5.200∼7.117%)와 전세자금대출(주택금융공사보증·2년 만기) 금리(5.230∼7.570%)도 7%를 훌쩍 넘었다.

이는 지난달 빅 스텝의 영향으로 주담대 금리의 산정 지표가 되는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데 영향을 받았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전월(3.40%) 대비 0.58%p 오른 3.98%로 집계를 시작한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지난해 10월 1.29%에서 올해 2월 1.64%, 6월 1.97%, 9월 2.96%를 거쳐 3.98%로 상승했다. 

대출금리는 내년 상반기까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이번 기준금리 상승 폭(0.25%p)만큼만 더 높아져도 현재 7%대 후반인 대출금리 상단은 조만간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 만에 연내 8%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image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2.25%인 기준금리를 2.50%로 0.25%포인트(p) 올렸다. 사상 처음으로 4회 연속으로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치솟는 물가와 원·달러 환율 방어 등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이에 따라 대출금리가 기준금리 인상 폭만큼 오를 경우 가계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27조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은행의 모습. ⓒ천지일보 2022.08.25

시장 예상대로 한은이 내년 초 최고 3.75%까지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경우, 대출금리 9% 시대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대출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특히 2년 전 초저금리를 바탕으로 무리하게 자산을 사들인 대출자 중에서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연 상환액이 60% 가까이 급증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문제는 올해 들어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한 것과 대조적으로 기업대출의 경우 최근까지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채권시장 경색 등으로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5대 은행의 기업대출(개인사업자 등 중소기업 대출 포함) 잔액은 704조 6707억원으로, 작년 말(635조 8879억원)보다 10.82%(68조 7828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709조 529억원→693조 6475억원)이 15조 4054억원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 대출이 늘어난 가운데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나 한계기업(3년 연속 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늘어나 결국 금융권 전체 건전성 위험으로 번질 우려가 커진다. 

한은은 올해 기업 신용이 빠르게 늘어나는 데다 국내외 경기 둔화, 대출금리 인상, 환율·원자재가격 상승 등 경영 여건도 나빠진 만큼 한계기업 수와 차입금의 비중(금융보험업 등 제외한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 대비)이 지난해 14.9%, 14.8%에서 올해 18.6%, 19.5%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통위 #기준금리 #베이비스텝 #이자부담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