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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납세범위 확대’
불교 ‘세부 논의 필요’
개신교 ‘일부 적극참여’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정부가 지난 8일 세법 개정안을 통해 종교인 과세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이에 불교와 기독교 등 종교계는 대체로 정부 방침을 환영하며 납세의무를 충실히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개신교계 일부에서는 입법 의도를 무시한 기형적 법개정이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납세의무를 충실히 지켜야 할 종교인들에게 특혜 또는 면죄부를 준 조치라고 지적했다. 또한 종교별 특성 파악 등 과세를 위한 정부의 사전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종교인도 예외 없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종단의 공식 입장”이라며 “정부 방침에 따라 종단에서도 납세를 위한 준비작업을 착실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조계종은 기획재정부 발표에 앞서 내년부터 총무원 등 중앙종무기관에 종사하는 스님들을 대상으로 소득세 납부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납세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종단 차원에서도 과세에 반대해 본 적이 없다”고 강조해 조계종이 사실상 정부의 종교인 과세 방침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전했다.

불교계는 종교인 과세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는데도 정부가 충분한 사전 대화나 준비 없이 불쑥 발표한 점을 아쉬움으로 드러냈다. 정부는 그동안 종교인 과세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고 갑자기 논의를 접는 일을 반복했는데 이번에도 (종교계와) 세부적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과세 방침을 내놨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진보성향의 교단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정부에 적극 호응해 세금을 내도록 힘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NCCK 관계자는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종교인 과세 방안이 나온 것은 환영한다”면서 “성실히 납세를 할 것이며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 활동도 벌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NCCK 측에서도 정부의 준비 소홀과 과세와 관련해 보여온 태도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덧붙여 근로소득세가 아니라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종교인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음을 우려하며, 몇 가지 수정해야 할 사항들은 2015년 시행 전까지 보완을 위해 준비작업을 해 가겠다고 전했다.

종교인 과세를 사실상 반대해온 보수교단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공식 입장을 보류하며 내용을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는 과세 방침을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94년부터 납세를 공식 결정하고 교구별로 이런 방침을 지켜왔으며, 앞으로도 국가가 정한 법률에 따라 납세의무를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주교계는 당시 사제 생활비, 성무활동비, 수당 및 휴가비 등을 납세 범위로 정하며 과세를 지켜왔다. 최근에는 사제의 생활을 돕기 위해 내는 미사예물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실제 수입을 정확히 보고해 과세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하겠다”면서 “2014년부터는 미사예물도 납세 대상에 포함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타소득 과세는 납세의무 면죄부”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9일 성명을 내고 정부의 종교인 과세 방침이 입법 의도를 살리지 못한 기형적인 법적용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종교인의 소득을 사례금이란 명목으로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겠다는 것은 종교인들에게 납세의무를 다했다는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경영연구원, 바른교회아카데미, (재)한빛누리가 재정 건강성 증진을 위해 만든 연대단체다. 이 단체는 “기타소득이란 소득자의 주된 활동 외의 파생적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부가적 소득을 의미한다”며 “종교인이 신도를 돌보고 교리를 가르치고 공동체를 가꾸는 활동에 대한 사례로 받는 규칙적인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면 과연 종교인의 주된 활동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 단체는 “필요경비 80%를 인정하는 기타소득자는 같은 금액을 받는 근로소득자와 비교할 때 근로소득세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세금만 부담한다”며 “이는 종교인에게 명목상의 기타소득세를 부담하고 납세의무를 다했다는 면죄를 주고, 다른 직종의 근로자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줘 국민화합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기타소득은 예외 없이 필요경비를 공제한 소득금액(20%)을 원천징수한다. 따라서 소득이 낮은 종교인도 원천징수액을 부담하게 된다”며 “이 때문에 물적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에게는 부담이 되고 실질 소득세 부담률의 역진성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종교계, 과세 기준·대상 보완 후 법적용 요청할 계획

정부는 2015년부터 23만여 명에 달하는 국내 종교인(성직자)을 과세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기재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의 골자는 근로소득 형태가 아닌 사례금 형식의 ‘기타소득’ 형태로 과세하는 것이다. 종교인이 수령한 금액의 80%는 필요경비로 인정해 비과세 처리하기로 하고, 이외 소득에 대해 20%의 기타소득세율이 적용된다. 주민세 2%는 별도로 부과된다.

과세 대상인 종교인(성직자)의 정의와 규모는 아직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1년 발표한 ‘한국의 종교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종교인 수는 23만 2811명이다. 개신교가 14만 483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불교(4만 6905명), 천주교(1만 5918명), 기타종교(2만 9505명) 등이다.

기재부는 현재 자발적으로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는 종교인들도 2015년부터 기타소득으로 납부토록 했다. 2015년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종교계는 종단별 사정을 감안한 과세 기준과 대상 등을 명확히 결정한 후 시행령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측에서도 종교인 과세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과세당국이 종교인 과세 현황을 파악한 다음에 징세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련법을 개정할 때 소득 신고 항목에 종교인과 종교인 단체 등을 넣을 수 있도록 해 종교인 소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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