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했다. 사기가 꺾인 군인이 전쟁에서 이길 턱이 없다. 사기가 충만한 군대는 일당백으로 싸워도 이긴다. 지휘관들이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병사들이 사기를 잃지 않게 하려면 공평해야 한다. 특별히 누구를 더 봐주거나 차별대우 하면 사기에 문제가 생긴다.

위문공연이라는 것도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6.25 전쟁 때에도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가 한국까지 날아와 자국 병사들을 위문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우리 병사들도 고국에서 찾아 온 연예인들로부터 위안 받고 힘을 얻었다. 목숨을 걸고 베트남 참전 용사 위문 공연을 다녀왔다는 어느 노 여가수는 속옷까지 벗어주었다는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위문공연이 병사들에게 ‘고문’일 수도 있다. 여자 구경하기 힘든 전방에서 늘씬한 미녀들이 찾아와 공연을 펼치면 숨이 넘어갈 듯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하지만, 그들이 떠나고 나면 심란해지기 십상이다. 그래, 애꿎은 담배만 태워대는 것이다.

병사들에게 휴가는 최고의 위안이다. 때가 되면 나가는 정기 휴가는 말할 것도 없고 칭찬받을 만한 공을 세워 받게 되는 특별휴가는 달콤하기 그지없다. 집안에 경조사가 생겨도 특별히 휴가를 내 준다. 더디기만 한 국방부 시계를 원망하며 하루하루 견뎌내는 것도 손꼽아 기다리는 휴가가 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재미없다고 하지만, 축구에서 이기면 외출 외박을 나갈 수도 있었다. 지면 머리를 박아야 했지만, 이기면 외출을 나가 자장면에 소주도 한 잔 할 수 있었다. 예전 전방에선 애인이 면회 오면 외출, 부모님이 오시면 외박을 내보내 주었는데, 부대 근처 다방 아가씨에게 부탁해 면회를 오게도 했다.

요즘이야 병사들이 밖으로 전화도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부대에 들어가는 순간 오로지 편지로밖에 연락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던 시절도 있었다. 부모님에게는 가뭄에 콩 나듯 편지를 써도 애인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써대기도 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마을 앞 동구나무처럼 든든하게 아들을 기다려 주었지만, 죽어라 편지를 써 보낸 애인은 고무신을 거꾸로 신기 일쑤였다. 그 바람에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춘이 허망한 선택을 하기도 했다. 버스도 다시 오고 여자도 다시 온다는 걸 알았지만, 애인의 변심은 어린 청춘의 사기를 꺾고 목숨을 끊게도 했다.

청춘들에게 연인과의 이별만큼 큰 고통도 없다. 대개는 이별의 고통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는 순간이 군대 가면서 애인과 헤어지는 것이다. 부모나 가족과의 사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어린 청춘들에게 애인과의 헤어짐은 처음 겪게 되는 가장 아픈 이별의 고통이다. 그러니 자나 깨나 두고 온 애인 생각이고, 편지가 뜸해지고 마침내 편지마저 끊기면 순진한 병사는 상심하고 만다.

연예병사들 때문에 수많은 병사들의 사기가 꺾였다는 소식이다. 누구는 권력도 없고 든든한 배경도 없어 전방에서 뒹굴고, 누구는 팔자가 좋아 베짱이처럼 노래나 부르고 외출 외박 무한 리필로 즐긴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지난겨울에도 연예병사인 가수 비가 김태희와 밀회를 즐기다 언론에 노출되는 바람에 연예병사들의 외출 외박과 근태 등에 관한 논란이 일었고, 국방부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말뿐이었고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병사들 사기 높이라고 생겨난 연예병사가 병사들 사기를 꺾어서는 안 될 일이다. 졸(卒)들을 졸로 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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