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진나라 시황제 암살에 실패한 장량은 하비 땅으로 도망쳐 이름도 바꾸고 숨어 살았다. 그곳에서 기이한 노인을 만나 태공망의 병법서를 받은 뒤 임협의 무리와 어울리면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쳐 온 항우의 작은아버지 항백을 구해 주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진나라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진승이 군사를 일으켰을 때 장량도 젊은이 백여 명을 거느리고 일어났다. 그는 유 땅에 있는 경구의 밑에 들어가려고 했다. 경구는 독립된 군사를 모아 스스로 초왕이라 일컫고 있었다. 장량은 유 땅으로 가던 도중 우연히 패공을 만나게 되었다. 패공 유방은 그 당시 수천 명의 군사로 하비의 서쪽 일대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장량은 패공의 진영에 가담하기로 결정하고 유방으로부터 정식 구장에 임명되었다.

그 뒤부터 장량은 패공에게 태공망의 병법을 자주 건의하여 그 때마다 채택되곤 했다. 장량은 패공이야말로 그 시대의 영걸임에 틀림없다고 믿었으므로 처음 경구의 진영에 가담하려던 생각을 깨끗이 잊어버렸다.
패공은 설 땅에 들어가서 항량의 군대와 합류했다. 항량이 희왕을 옹립하자 그때 장량은 항량에게 정식 건의를 했다.

“초왕의 후계자를 결정하셨으니 이번에는 한(韓)왕에 대한 배려가 계시기를 바랍니다. 한나라의 제후 가운데는 횡양군 성이 인물입니다. 그 분을 한왕으로 세우시면 우리의 세력은 보다 강화되리라고 믿습니다.”
항량은 장량에게 명하여 성을 찾아 데려오게 하고 그를 한(韓)왕에 세운 뒤 장량을 그 대신으로 임명했다. 장량은 한왕과 함께 군사 천여 명을 이끌고 서쪽으로 나아가 한나라의 옛 땅을 공격하여 여러 성을 함락했다. 이들 성읍은 즉시 진나라에 다시 빼앗기고 말았지만 장량은 계속 버티면서 영천일대에서 유격전을 펼쳤다. 그런 다음 낙양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패공이 환원에 이르렀을 때 그와 합류하여 다시 한(韓)나라의 10여 성을 탈환한 뒤 진나라 장군 양웅의 군대를 무찔렀다.

그곳에서 패공은 한왕에게 양책 땅의 수비를 맡기고 자량과 더불어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완을 함락시키고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무관 땅을 돌파하자 2만의 군사를 몰아 요관 기슭에 포진한 진나라 군대를 단숨에 공격하려고 했다. 그 때 장량이 나서서 만류했다.

“적군은 아직도 강합니다. 절대로 깔보실 일이 아닙니다. 들으니 적장은 푸줏간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장사꾼이란 원래가 흥정에 능한 법입니다. 패공께서는 이대로 성안에 머물러 계십시오. 우선 선발대를 보내서 근처의 산등성이에다 무수한 깃발과 장대를 세워 대병력으로 위장하는 것입니다. 식사도 5만 명분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역이기를 보내 적장의 눈치를 살피게 합시다.”

과연 장량의 계책대로 하자 진나라 장군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패공과 손을 잡고 서쪽으로 나아가 함양을 치고 싶다고 스스로 청해왔다. 패공은 그 청을 선뜻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장량이 다시 나섰다.

“진나라를 배반하겠다고 하는 자는 그쪽의 장군뿐입니다. 부하들이 순순히 따라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위험한 일이니 협상으로 방심한 틈을 타서 지금 쳐들어가는 것이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패공은 장량의 건의를 즉시 받아들여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쓰러뜨리고 나머지 잔당들의 추격전을 벌였다. 북쪽 남전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진나라 군을 크게 무찔렀다. 공격을 거듭한 패공은 마침내 함양에 입성했다. 그 때 진나라 왕 자영의 항복도 받았다.

패공이 진나라 궁전에 들어가 보니 궁전에는 말과 보물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후궁의 미녀들도 수천 명을 헤아려 패공은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패공은 궁전 안에 머물 생각으로 번쾌가 야영을 권하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때 장량이 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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