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혁신방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첫째, 중앙당 당직자 수를 정당법이 정하는 범위 이내로 줄이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남는 인력을 시도당의 정책요원을 파견하여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자체 구조 조정에 지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당 혁신방안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써가며 국민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이것이 민주당 혁신의 시발점임을 밝히고 정당민주주의와 풀뿌리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실천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제1야당이 정치 혁신을 시작한다고 본보기로 내놓은 것이 두 가지인데, 혁신방안이라 보기엔 내용이 약하고 어딘지 초라해 보인다. 지금까지 국민 혈세로 제공되는 국고보조금 덕분에 민주당은 돈 걱정 없이 잘 지내왔다. 올해 상반기에 받은 국고보조금이 79억여 원이니 1년분을 치면 약 160억 원 정도다. 이 보조금이 민주당 유급직원의 보수로 전액이 집행되는 건 아니지만 1인당 연봉 5천만 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할 때에 320명을 고용할 수 있는 큰 액수다.

김 대표는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중앙당 당직자의 수를 정당법이 정하는 범위 이내로 슬림화하겠다. 이제까지 관행적 편법운영으로 비대해져 있는 중앙당을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는데, 정당법을 보면, 중앙당에 근무하는 상근직 유급사무직원을 100명으로 정하고 있고, 초과하면 그 직원 수에서 곱한 일정액을 다음해에 지급하는 보조금에서 감하도록 돼 있다. 인원이 넘는다 하더라도 국고보조금 지원에서 불리한 문제지 관행적 편법 운영은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여준 정치적 활약상은 국민이 보기에 실망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김한길 대표가 처음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국민이 요구하는 변화를 하나하나 실천해가겠다”고 약속하는 한편으로,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꺼이 혁신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까지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그로부터 6주가 흐른 이때까지 정당지지율에서는 변함없이 18%대를 유지하고 있고,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창당 시 가상 지지도에서 그보다 절반 이하로 밀리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민주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벗어나 김한길 대표 등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정상 궤도에 진입한 지 한 달 반이 가까워오는데, 그만하면 충분히 영혼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 변화를 이루기 위해 정치 기득권 내려놓기나 지난 대선 때에 약속한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정당 공천권 폐지 등 정치개혁의 큰 틀에서 굵직한 현안을 해결하여 민주당이 구태정치 개선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건만 그런 결과물은 아직 없다.

새 집행부를 구성하고 한 달 반 만에 혁신방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160명인 직원 수를 100명 선으로 줄이고, 그 줄인 인력을 시·도당으로 보내겠다, 사무실을 축소 운영하겠다는 미시적인 내용이다. 그러면서 국민이 요구해온 정치 개혁에 대한 구체적 방안 없이 그냥 두루뭉술하게 “제대로 된 정당민주주의와 풀뿌리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민주당은 계속 노력할 것이다”라는 것인데, 정말 안일한 자세다. 어느 정당이든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정당민주주의와 풀뿌리민주주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정당이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

‘정당민주주의’라고 하니까 정치인들마저 ‘정당 내에서의 민주주의’로 해석하고 있다. 즉 중앙당 위주보다는 시도당의 배려, 당직자의 의견만큼이나 일반당원들의 의견이 정당정책이나 당무활동에 반영, 상향식 공천 등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정당민주주의’ 제도는 오늘날 대다수 민주국가가 지향하고 있는 정치제도로서, 그 핵심은 국민이 정당을 통하여 건전한 정치의사를 형성하며, 정당이 정치의 구심 역할을 하여 사회를 유지하는 제도로서 ‘정당중심적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렇게 돼야 민의를 수반하는 책임정치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민주주의는 국민의 정치적 구심체인 정당의 발전을 통하여 국가·사회전반에 걸친 정치적인 발전을 도모한다. 정당민주주의 하에서는 양당제 중심이라기보다 국민의 건전한 정치의사를 형성하는 모든 정당이 자유로운 활동을 신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더욱 보장하고 도모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현행과 같이 양당제의 보호막 속에서 국회의원 의석을 가진 정당에 대해서만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주는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 모든 정당이 헌법적 가치에 따라 최소한 국민의 건전한 정치의사 형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수적인데, 민주당이 양당제의 보호막에서 벗어나야 좋은 ‘정당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풀뿌리민주주의는 지방자치를 언급한 말이다. 지역개발과 주민복지가 근간인 지방자치는 시행된 지 오래됐고, 내년 6월 4일이면 제6회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그러나 중앙정치에 예속된 채로 그 실상을 보면 아직 무늬만 지방자치다. 민주당이 제대로 된 풀뿌리민주주의를 하고 싶다면 말만 요란하게 할 것이 아니라 기초의원 등에게 족쇄를 채우는 정당공천권을 폐지하고, 광역단체나 국회의원 후보자 결정시에 그 지역 당원이 권한을 갖는 상향식 공천제도로 가면 된다. 민주당이 자체 구조조정에 불과한 내용을 혁신이라 하여 폼 잡을 게 아니라 진짜배기 혁신안을 내놓아 국민으로부터 “정신 차렸네” 하는 말을 듣는 게 급선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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