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상 화백 그림처럼 살다, 삶처럼 그리다 (2)
이종상 화백 그림처럼 살다, 삶처럼 그리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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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을 피운 화백 일랑 이종상 교수

▲ 1982년작 독도의기II, 89X89cm, 장지화 (사진제공: 일랑미술관)

통섭이야말로 걸작이다
역사와 만난 작품, 127만여 세계인의 마음속으로

이종상 교수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끊임없이 그 작품에 빠져든다. 그림 대상과 물아일체가 되어야지만 작품이 오롯이 가치를 발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그다. 오죽하면 원효대사를 그리기 위해 기신론까지 공부했을까. 이를 인연으로 급기야 동국대학교 동양철학과에 학사로 편입한 뒤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현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근원과 원리를 알아내는 습관이 배어있는 이 교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미시적인 것은 거시적인 것과 하나입니다. 마치 나무 한 그루가 숲의 일부라는 개념과 같지요. 통섭의 논리가 원효의 기신사상에서 나오는데 ‘전공이 달라도 뿌리는 같다’란 말입니다. 학문을 제대로 닦은 사람은 다른 학문도 쉽게 깨우칩니다. 원리와 그 밑바탕이 같거든요. 제가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런데 원효대사의 기신론을 연구하다 보니 기신론과 성경이 서로 상통하는 게 많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 창세기 1장에서 나오는 천지창조 이야기로 화백의 도리와 그림의 원리를 설명하는 이 교수에게 그간 쌓은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만물이 유기적이기에 통섭, 다시 말해 소통 역시 가능한 것이다.

그는 단순히 외형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대상의 철학과 인문학적인 요소를 연구해 내면까지 그리는 것이다. 이처럼 통섭과 소통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루브르박물관 카루젤 초대개인전에서도 빛을 발한다.

당시 프랑스 문화부의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게 된 그는 박물관의 입구인 유리 피라미드 아래에 반쯤 무너진 성벽이 있는 공간에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문화재를 연상케 하는 작품을 설치했다. 벽화 길이만 무려 72미터였다.

박물관 측이 내놓은 까다로운 조건에도 이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너진 성벽 위에 강화 마니산의 이미지를 배면조명(背面照明)으로 형상화했다. 전 세계 관람객 127만여 명이 작품을보고 감탄했다고. 박물관에선 이 설치작품을 영구전시하기를 요구했다. 어마어마한 액수로 말이다.

그러나 그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약탈한 ‘직지’와 ‘외규장각 도서’ 등을 반환하면 작품을 박물관에 기증하겠노라고 제시했다. 박물관 측은 “정치적인 문제”라며 난색을 표했고 이에 이 교수는 “문화적 자존심”이라며 작품을 한국으로 가져왔다.

이 교수의 작품을 보면 그림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작품 규모와 상관없이 역사와 인문학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다.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는 말이 그의 작품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어느 한 곳에 매이지 않고, 구애받지 않으니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과 눈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한 통섭의 힘이다.

그는 많은 ‘전공 바보’가 양산된 것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서양화와 동양화로 나뉘고 동양화에서도 매, 난, 국, 죽 등으로 전공이 세분화됐다. 요즘 그림을 그리겠다는 사람은 처음부터 전공을 정해 그 그림만 그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난을 그리는 화가에게 국화를 그려달라고 하면 “난(蘭)밖에 그릴 줄 모르오”라는 답이 돌아온단다. 비단 미술계만 해당되는 일이 아닌 우리네 학문 실태를 그는 “전공 바보가 아닌 두루두루 섭렵하면서 전문성을 갖추는 전문가가 나야 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교수는 충남 예산 유복한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평소 그림 그리기를 취미생활에 붙이셨던 아버지 영향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림은 그의 삶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아버지가 눈을 감은 바람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고작 열두세 살의 나이였다. 어머니는 광주리를 내다 팔았다.

근근이 생활했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엔 서울역에서 노숙하며 공부했고 노숙자와 노동자들이 그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23세에 최연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로 이름을 올릴 때에도 그들을 모델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시대와 민중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인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고 그 이상향을 이루기 위해 사회와 소통해오고 있다. 진정한 화가는 붓만 잡는 것이 아니라 회사후소(繪事後素)란 공자의 가르침처럼 바른 바탕, 즉 바른 눈과 마음을 갖고 나와 세상을 본 후에야 꾸밈을 더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준다.

▶ (3)편에 계속됩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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