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만약 그대의 국가가 작은 것이 불만이라 출가한 것이라면 내 나라 영토의 반을 당신에게 주겠으니 출가하지 말라.”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한 후 주변국 빔비사라왕이 했던 말이다. 그는 싯다르타의 지혜와 총명함을 높이 샀다.

싯다르타는 왕손으로서 백성 위에 서서 최고의 권위와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명석하고 지혜가 있어 종족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등 정치적인 역량이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세속에 살았어도 큰 부귀영화를 누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고행의 길을 자처했다. 그는 마음에 어떠한 변화를 겪었던 것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는 삶과 죽음에 관한 고뇌를 통해 종교성이 짙어졌다. 그가 29세 되던 해에는 아내 야소다라가 임신해 아이를 출산했고 싯다르타는 그의 이름을 ‘라훌라(의미: 속박이 생겼다)’라고 지었다. 이 당시 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전설이다.

싯다르타가 살고있는 왕궁에는 동서남북 네 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외출하기 위해 마부와 함께 동문을 나왔다. 이때 그는 허리가 굽고 막대기에 의지하면서 발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비틀거리는 백발의 노인을 봤다. 그는 마부에게 그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고 묻는다. 마부는 “저 사람은 늙었고, 사람이 오래 살면 노인이 됩니다”고 말했다.

인생에 대한 생각에 잠긴 싯다르타는 곧 남문을 통과했다. 그곳에는 심한 병을 앓아 자신의 배설물 위에서 허우적대는 병자가 있었다. 그를 한 사람이 일으키고 있는 장면을 바라봤다. 싯다르타는 역시 마부에게 연유를 물었다. 마부는 “그는 병든 사람이며, 모든 사람은 병이 들기 쉽습니다”고 답했다. 서문을 나섰을 때는 장례식 행렬과 마주쳤다. 그는 생로병사에 관한 고뇌에 빠졌다.

이후 북문을 나섰을 때는 사문(불문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봤다. 싯다르타는 그의 평온하고 침착한 태도에 감명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그토록 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혹자는 이 예화에서 동서남북에 늙음‧병‧죽음‧출가를 배치한 것은 시적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싯다르타의 출가를 재촉하기 위해 하늘의 천신이 변화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 일화에서는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심리적인 과정을 묘사했다. 이후 그가 출가를 할 수 있도록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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