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학보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국 호적법 “제2의 창씨개명”

[천지일보=김명화 기자] “화교는 난민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음식점 ‘만다복’을 운영하고 있는 서학보(54) 씨. 서 씨의 부모는 대만 출신으로 중국이 공산화된 후 한국으로 건너와 인천에 터를 잡고 살았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서 씨는 초등학교 시절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외국인 농지 소유권을 박탈했어요. 하루아침에 우리 땅이 남의 땅이 돼버렸지요. 그때는 자세히 몰랐지만 부모님이 부둥켜안고 통곡하시는 모습을 보고 무서운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조금 자란 후, 당시 일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을 때 서 씨는 한국 땅의 모든 것이 다 싫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에서부터 한국 땅에 자라는 나무, 풀 한 포기까지.

그 이후에도 서 씨는 화교라는 신분 때문에 많은 차별을 당해야 했다. 결국 참다못한 서 씨는 한국 땅을 반드시 떠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 국가장학생으로 국립대만사범대에 합격했어요. 비행기에 오를 때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그리던 조국 대만은 서 씨를 반겨주지 않았다. 고향이고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갔건만 대만은 서 씨를 이방인 취급했다. 특히 당시 정치 이데올로기가 강했던 대만은 서 씨를 ‘불순자’라는 낙인까지 찍었다.

서 씨는 그때 많은 고민을 하면서 19살까지 자신을 길러줬던 한국이 정녕 자신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후 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으로 돌아 온 서 씨는 무역업, 중국음식점, 완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천에 차이나타운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인천 중구청의 요청으로 차이나타운 개발에 합류하게 된다.

“미친 듯이 3년 동안 무보수로 뛰었어요. 인천 차이나타운 건설 당시 한국은 투자의지만 있었지 준비는 많이 부족했거든요.”

인천 차이나타운 건설이 인연이 돼 서 씨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음식점 ‘만다복’을 운영하고 있다.

서 씨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화교 아내와 결혼해 대만 국적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국내법상 화교끼리 결혼을 할 경우 영주권은 받을 수 있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 씨에게 국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전혀 없다”였다. 그는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행위를 ‘창씨개명’이라고 표현했다.

“일본 식민지 시절 일본이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창씨개명을 요구한 적이 있었지요. 한국의 호적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적을 바꾸려면 본관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원래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없게 만드는 겁니다. 이게 창씨개명이 아니고 뭡니까?”

이어 서 씨는 한국 교과서에서 일본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전에 한국 호적법에 관해 먼저 잘 살펴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50년 전에나 맞는 제도와 법을 한국이 유지한다면 세계화 격랑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법과 제도가 내실 있게 정비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서 씨는 화교에 관한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들이 화교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점 역시 문제점으로 꼽았다.

사실 서 씨는 인터뷰 내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왜냐하면 난민인 화교를 받아주고 살게 해준 나라, 한국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서 씨가 남긴 마지막 말이 내내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화교는 난민이니까… 난민답게 살아야지요. 우리 처지도 모르고 국민자격을 요구하면 그건 억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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